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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82]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지은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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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레오나르도 다빈치, 젊은 여인의 두상, 1483년경, 종이에 은필, 18.1×15.9cm, 토리노 왕립도서관 소장.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는 지금부터 500년 전, 1519년 5월 2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내가 해야 할 만큼의 예술을 해내지 못함으로써 신과 인간들에게 죄를 지었다”고 후회하며 숨을 거뒀다고 한다. 실제로 레오나르도는 지금도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가 틀림없지만, 정작 완성한 미술품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평생 이탈리아와 프랑스 왕실을 전전하며 미술가가 아닌 기술자로 살아간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화실에 들어앉아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기에는 호기심과 재능이 너무 많은 분야에 걸쳐 넘쳐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기 직전에 레오나르도는 아마도 자신이 남긴 수많은 드로잉을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쉬지 않고 본 모든 것과 상상해 낸 모든 것을 종이에 그림으로 남겼으니 그 양과 범위가 방대하기 그지없다. 그중 이 '젊은 여인의 두상'은 '드로잉계의 모나리자'라고 할 정도로, 그 어떤 회화보다도 아름다운 초상화로 손꼽힌다.

이 초상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유화 ‘암굴의 성모’ 중에서 천사의 얼굴을 그리기 위한 스케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윽한 눈동자와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우아한 움직임은 정말이지 이 세상 사람 모습이 아닌 것 같다. ‘여인의 두상’이라고는 하지만, 천사에게 성별이 없는 것처럼, 이 인물 또한 남녀 구별이 무색하게 오직 아름다울 뿐이다. 출렁이는 머릿결과 이토록 부드러운 얼굴을 오직 종이 위에 은필로 그은 선(線)으로만 그렸다니 놀랍지 않은가. 신께서도 그의 드로잉을 보고 그림을 적게 그린 그 큰 죄를 용서해주셨을 것이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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