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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레이더A] 한일갈등, 아세안은 누구 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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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강제 징용 문제'로 일본이 정부 간 협의를 요청하는데 한국은 어떤 입장이냐." 두어 달 전 몇몇 아세안 대사들이 기자에게 건넸던 질문이다. 당시 일본은 한국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고, 일본 매체를 통해 정부와 정치인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대항 조치 관련 발언들이 흘러나왔다. 아세안 대사들은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검토 중"이라고 되풀이하는 한국 정부 대응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일 관계가 냉각되는 것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지난 1일 일본이 한국에 대해 반도체 등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일이 정면충돌하자 아세안에서도 '터질 게 터졌다'며 이번 사태의 파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세안 10개 회원국들 입장에선 투자 큰손 격인 한국 못지않게 일본도 중요하다. 아세안 대형 프로젝트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이 협력하는 사례가 많다. 따라서 아세안 국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싸우면 자국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아세안의 또 다른 걱정은 한국이 국제사회 여론전에 돌입한 점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갈등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 아세안이 참석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등에서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알리는 등 아세안 등 참여국들의 지지를 얻어내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여론전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매일경제

동남아연구소(ISEAS)가 작년 말 아세안 지역 전문가와 정부, 기업, 언론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동남아시아 현황 : 2019' 보고서에 따르면 아세안은 가장 신뢰하는 나라로 일본을 꼽았다. 응답자의 65.9%가 메이저 파워 중 일본이 세계 평화, 안보, 번영 등에 기여하는 데 '올바른 일'을 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가장 방문하고 싶은 나라로 일본은 유럽에 이어 2위에 올랐고,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외국어를 묻는 질문에선 중국어(44.7%)와 일본어(15.7%)가 각각 2·3위를 차지한 반면 한국어는 5%에 불과했다. 1968년 싱가포르의회법에 의해 설립된 ISEAS는 아세안 연구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싱크탱크다. 이 조사가 아세안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세안의 '정책 결정자들'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아세안은 특정 국가를 편드는 것을 극도로 꺼리지만 우리 앞에선 '립서비스'를 해줄지 몰라도 본심은 일본에 기울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중에 이어 한일 간 '미니 무역전쟁'으로 비화하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 한국도 일본도 소중한 친구다." 아세안 대사들의 공통된 바람에 한국과 일본 정부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일 갈등이 오래갈수록 신남방정책을 추진하는 한국에도 좋을 게 없다.

[국제부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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