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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상처 입은 영화, 서슬퍼렇던 시대를 증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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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30)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감독 이원세(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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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세 감독의 영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5년부터 여러 문학잡지에 발표한 중·단편 12편을 묶은 조세희의 동명 소설집이 원작이다. 원작 소설이 출간되고 2년 뒤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해인 1981년 가을에 개봉한 영화는 소설처럼 산업화 도중에 착취당하고 멸망하는 어느 노동자 가문의 연대기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조세희가 직접 참여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시나리오 사전심의에 걸려 반려됐고 홍파가 대신 집필한 시나리오로 완성한 프린트도 검열로 불구가 된 상태를 감추지 못한 채 세상에 나왔다.

영화는 난장이 김불이의 아들 영수(안성기)와 옆집 사는 명희(전영선)의 어린 시절 회상으로 시작하고 성인이 된 영수가 ‘어딘가’를 다녀온 장면이 이어진다. 그는 아마도 노동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갔다 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화면에선 끝내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다. 소설에서 원래 공업단지에 살고 있는 것으로 설정된 김불이 가족은 영화에선 염전에 살고 있다. 착취와 피착취의 첨예한 대립이 부각되던 노동쟁의의 복판 묘사보다는 곧 사라질 염전에서 고된 노동에 종사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 좌절, 절망이 주된 정조로 부각될 것이었다.

영화의 서사는 부분적으로 느슨하고 작위적이지만 이원세 감독은 강렬하게 응축된 화면들을 서사 곳곳에 촘촘히 배열한다. 염전이 펼쳐진 마을의 풍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롱숏의 여백과 그 여백을 가로지르며 걸어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잡아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중심부에서 밀려나 소외된 슬픔을 삼키고 있는 이들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옮겨낸다. 롱숏과 대구를 이루는 과감한 클로즈업에는 영수를 연기하는 젊은 시절 안성기의 형형한 눈빛과 남편에겐 자상하고 자식들에겐 엄하게 대하면서 자존을 지키는 영수의 어머니 전양자의 단호한 표정이 잡힌다. 비판적 리얼리즘의 예각이 둔해진 대신, 재개발로 마을 사람들이 거의 떠난 염전 마을에 불도저 한대가 탱크처럼 진입하는 광경을 멀리서 포착한 후반부를 비롯해 서늘한 슬픔에 젖게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영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검열로 훼손된 자신의 상처를 껴안고 영화 안팎을 감싼 시대의 불우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김영진/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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