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을 보고 반려인의 자격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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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매년 열리는 ‘펫&팸 페스티벌’에 초대받아 다녀왔다. 지난해 강형욱 훈련사를 시작으로 올해는 ‘냐옹신’ 나응식 수의사와 유기견의 대모인 배우 이용녀씨가 자리를 빛냈다. 내가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는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을 보고 관람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책 <히끄네 집>이 나왔을 때, 북 토크를 여러 번 해 본 경험으로, 이번 행사에 함께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건 여전히 떨리지만 한편으론 재밌다. 2박3일 일정이라 짐을 싸고 있는데 히끄가 캐리어에 쏘옥 들어가서 ‘날 두고 어딜 가냐옹?’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히끄의 행동은 평소 상자에 들어가 노는 것처럼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출장을 앞두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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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날부터 태풍급 비바람이 불어서 비행기가 결항될까 봐 걱정했는데 무사히 부산에 도착했다.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은 노숙자 제임스가 길고양이 밥을 만나서 변화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인데, 밥을 처음 알게 된 건 영화가 아닌 <빅이슈> 잡지를 읽고서였다.
한국판 <빅이슈> 동물 표지는 히끄가 최초였는데, 고양이 ‘밥’은 히끄보다 먼저 일본판 빅이슈 표지를 장식했던 이력이 있다. 표지 모델 선배 고양이라서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서 영화까지 보게 됐다.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만든 아찔한 장면이 걸리긴 했지만, 집사들만 아는 고양이의 매력 포인트가 잘 담겨서 장면 순간순간 엄마 미소를 지으며 봤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는 사실보다 놀라운 건 밥이 직접 연기했다는 것이다. <캡틴 마블>의 구스도 그렇고, 역시 진리의 ‘치즈냥’이다. 오스카상을 받아도 손색이 없는 연기 천재였다. 영화 곳곳에 전지적 고양이 시점에서 세상을 보는 카메라 앵글이 보이는데, 히끄가 서 있는 나를 바라볼 때, 고개를 많이 쳐들어야 해서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도 항상 바라봐줘서 이제 내가 히끄에게 눈높이를 맞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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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제임스의 묘연을 보다 보니 히끄와 내가 겹쳐 보이는 순간이 많았다. 나는 노숙자 생활이나 마약을 하진 않았지만, 히끄를 입양할 당시에 경제적·심리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다. 엄격한 기준에서 보면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반려인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부족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밥과 함께 지내려고 하는 제임스처럼, 나 또한 힘든 상황에서 히끄를 지켜주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히끄가 나를 붙잡아준 것 같다. 돈을 빌려주거나, 문제를 해결해주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아도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됐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서 필요한 절대조건을 다시 생각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풍족한 환경에서 인정을 베푸는 건 쉽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반려동물을 지켜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책임감이 아닐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며’는 이제 결혼식이 아니라 반려인이 새겨야 할 말이다.
이신아 히끄아부지, <히끄네 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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