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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英 총리 경쟁·브렉시트, 1980년대말 옥스퍼드大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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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헌트 등 총리 주자들 학내 보수파 토론클럽서 활약

조선일보

존슨(왼쪽), 헌트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영국 총리 경쟁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는 30여년 전 옥스퍼드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총리 경선 최종 후보에 오른 보리슨 존슨(55) 전 외무장관과 제러미 헌트(52) 현 외무장관은 물론이고, 최종 3파전에서 밀려난 마이클 고브(51·전 법무장관) 모두 1985~1988년 옥스퍼드를 함께 다니며 서로 학내 보수 학생 모임을 주도하며 경쟁하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옥스퍼드는 2차 대전 이후에만 11명째 총리를 배출한다. 이들은 대학 시절 유럽연합(EU)의 권력 확대에 반대한 마거릿 대처의 반(反)유럽주의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16년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나 지금의 총리 투표는 이들이 다녔던 1980년대 말 옥스퍼드대에서 이미 결정됐다"고 전했다. 그 시절 옥스퍼드 대학신문 '처웰(Cherwell)' 기자였던 FT의 칼럼니스트 사이먼 쿠퍼는 "현재 영국의 정치 뉴스를 장악하는 이들이 30년 전 처웰 지면에 다 있었다"고 했다.

당시 옥스퍼드의 보수파 학생은 토론 클럽 '옥스퍼드 유니언(Union)'과 '옥스퍼드보수연합(OUCA)'에서 활동했다. 특히 유니언의 회장직은 장차 보수당 총리를 꿈꾸는 학생들에겐 필수 코스였다. 회원들은 의회 하원처럼 서로를 '존경하는 멤버'로 불렀다. 존슨은 한 차례 고배 끝에 1986년 유니언 회장을 지냈고, 2년 뒤엔 이번 총리 경선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서 헌트에게 2표 차로 밀린 마이클 고브가 회장을 맡았다. 또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걸어 영국을 이 혼란에 빠져들게 했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도 1985~1988년 옥스퍼드를 다녔다.

고브가 유니언 회장을 할 당시 헌트는 OUCA의 회장을 맡았다. 그는 조용한 관리형 보수주의자였다. 해군 제독의 아들로 여왕의 먼 친척인 그는 자신이 보수당 내 상류·귀족층 파벌보다는 한 차원 위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OUCA는 보수파 모든 학생의 견해를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보수당에서 브렉시트 강경 노선을 주도하는 제이콥 리스-모그(50)는 이들이 졸업한 1988년에 옥스퍼드에 입학했다. 그는 입학 때부터 지금의 2대8 가르마를 고집하고 조끼까지 갖춘 정장만 입어 처웰에 '올해의 신입생'에 소개됐다.

이들의 꿈은 모두 언젠가 자신이 '영국을 지배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공에 따라 브렉시트에 대한 입장이 갈렸다. 옥스퍼드 출신 총리는 전통적으로 PPE 전공(철학·정치·경제 복합 전공)이 압도적이었다. '영국은 옥스퍼드 PPE가 지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캐머런뿐 아니라 애초 잔류파였던 헌트, 로리 스튜어트(국제개발부 장관)와 필립 해먼드(재무부 장관) 등은 모두 PPE 출신이었다. 지금의 브렉시트 '찬성파'는 주로 인문학 전공자들이다. 그리스·로마 문학과 역사를 다루는 고전학(존슨), 역사학(제이콥 리스-모그), 영문학(고브)처럼 복고·향수적이다.

학생 시절 이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이는 마거릿 대처 총리였다. 1988년 3월 대처는 유럽연합이 단일 통화 채택과 동일 노동법 적용 등 점차 '하나의 유럽'으로 나아가자 벨기에 브뤼주에서 반유럽주의 노선을 분명히 했다. 옥스퍼드의 보수파 학생들은 이런 대처를 열렬히 지지했다.

이들이 정치와 토론술을 익혔던 유니언 회장 선거는 동맹과 배신이 난무했고, 이는 이들이 의회에 진출한 뒤에도 되풀이됐다. 존슨은 1985년 이튼 동문 위주로 첫 번째 유니언 회장 선거를 치렀다가 실패하자, 다음 선거에선 사민당과 자유당 성향 학생들까지 포섭하며 자신을 '사민당 지지자'로 자처했다. 2016년 캐머런 총리가 브렉시트 '잔류'를 희망하며 국민투표를 실시했다가 '탈퇴'가 결정돼 물러나자 고브는 후임 총리 선출 과정에서 옥스퍼드 유니언 선배인 존슨을 도왔다. 그러나 이번에 메이의 후임을 뽑는 총리 투표에선 존슨의 조력자가 아니라 스스로 총리가 되려고 경쟁자로 나섰다. 존슨 역시 40년 지기 캐머런 총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마지막까지 재다가 '탈퇴'를 선언했다.

이들은 모두 메이 후임을 꿈꾸며 한때 메이 내각에 몸을 담았지만 기본적으로 토론가였다. FT는 "그들은 토론에서 브뤼셀(EU 본부)을 굴복시키지 못했고, 지금의 총리 투표도 마치 옥스퍼드 유니언 회장 선거처럼 서로 약점을 공격하고 배신이 난무한다"고 전했다.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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