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유 있는 생명> 저자 김은수 한화갤러리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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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6시, 중절모 혹은 헌팅캡을 고른다. 반려견 해피는 이미 나갈 채비를 마치고 꼬리를 흔들며 대기 중이다. 산책 중 길고양이에게 나눠 줄 사료와 캔 통조림, 물도 가방에 챙겨 넣는다. 같은 방식으로 매일 저녁 8~9시에도 산책 준비를 한다. 김은수 한화갤러리아 대표가 거의 하루도 거스르지 않고 4년째 이어오는 일과다.
김 대표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로는 유일하게 캣대디라고 밝힌 인물이다. 한국에서 매일 길고양이 밥을 주고 산다는 건, 길고양이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냉대와 타박을 당하는 일이다. 6년 전 어느 겨울 마당을 찾아온 고양이 한 마리가 인생을 온통 뒤흔든 뒤, 그는 기꺼이 개와 고양이의 집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에게 지난 6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간 만나고 헤어진 동물 이야기, 그러면서 쌓인 동물권 문제에 대한 생각을 모아 쓴 책 <이유 있는 생명>을 최근 출간하기도 한 그를 지난 5월30일 오후 여의도 63빌딩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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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독일에서 만난 미셸과의 인연
2013년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부임해 일하던 김 대표는 이듬해 귀국을 앞두고 있었다. 어느 날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털옷을 입은 고양이 한 마리가 거실 밖 테라스에 찾아왔다. 마당 연못에 고인 물을 먹고 있던 고양이를 보고 김 대표 부부는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당시 고양이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은 따뜻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내줬다.
이름 없는 그 고양이는 날마다 비슷한 시간에 찾아와 “밥 내놓으라”며 기척을 했다. 김 대표는 궁금했다. ‘이 고양이는 어디 살길래 밥을 못 먹고 매일 집을 찾아오는 걸까. 독일 고양이들은 ‘외출냥이’가 많아서 제집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고양이는 가족의 일원처럼 매일 ‘밥 정’을 쌓으면서도 경계를 놓지 않았다. 고양이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밥 먹고 귀가하는 고양이 뒤를 쫓은 적도 있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고양이를 만난 지 1년이 되어가던 때, 김 대표는 귀국을 앞두게 됐다. 긴 타지 생활 끝에 언제든 떠날 채비가 돼 있었지만 김 대표 가족은 ‘식구’를 그냥 두고 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고양이의 진짜 가족을 꼭 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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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함께 하는 삶의 시작
김 대표 가족은 동네에 전단을 붙이고,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는 등 수개월의 수소문 끝에 고양이의 이름을 알게 됐다. 8살 된 고양이 미셸은 김 대표 집에서 약 2㎞ 떨어진 한 농가에 살고 있었다. 농가에는 여러 동물이 살고 있었고, 농가 주인들은 미셸을 살갑게 챙기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전단과 신문 광고로 온 동네에 미셸의 사연이 알려진 덕분에 김 대표 가족이 떠나고 뒤이어 밥을 주겠다는 이웃이 나타났다. 그렇게 미셸은 김 대표 인생의 첫 고양이가 되었다.
미셸을 돌본 1년 이후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김 대표의 부인은 먼저 귀국해 길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운명적으로 미셸과 똑 닮은 고양이를 입양하기도 했다. 반려묘 로빈은 5년 전 누군가 아파트 경비실 앞에 케이지에 담아 버리고 간 고양이다.
미셸과의 인연 이후 김 대표는 그동안 가까이 있어도 눈에 띄지 않았던 동물보호소에도 시간이 허용하는 대로 찾아갔다. 동물권과 동물복지 문제에 눈을 떴고 한국에 돌아가면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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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들의 입장이라면…’
6년 동안 많은 개, 고양이와 만나고 헤어졌다. 보호소에서, 길에서. 지금의 반려견 해피는 보호소 봉사를 하다가 만났다. 실내 배변을 하지 못하는 해피를 위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시작한 것이, 동네 길고양이를 알아보고, 구조하고,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가늠하는 계기가 됐다.
해피와 산책하러 나갈 때 중절모나 헌팅캡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이유는 고양이 급식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다. “중절모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게 하고, 헌팅캡은 터프가이처럼 보이게 해줘서, 모자를 착용한 이후 시비를 걸어온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편의상 모자로 시비는 피하지만, 사람들이 동물을 “공존의 대상이 아닌 유해한 존재로 생각”하거나 “생명을 상품화하는 것”에 대한 질문은 더 깊어졌다.
동물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기업을 운영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매일 산책하며 고양이와 눈을 맞추다 보면 얘가 뭘 필요로할까 생각하게 되잖아요. ‘내가 저들의 입장이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역지사지의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어지죠.” 그런 마음이 일할 때도 적용되다 보니 사람과 더 잘 소통하고 통찰력도 더 좋아졌다는 것이 스스로 내린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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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 아니라, 가족”
동물에게 많은 위안과 영감을 얻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점은 많다.
“좋은 나라의 기준은 동물이 처우 받는 환경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도 궁극적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에게 주민세처럼 세금을 부과하고, 펫숍에서 구매하는 게 아닌 유기동물을 입양하고, 훈련과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고, 양육을 못 할 것 같으면 관할 보호소에 위탁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봐요. 삼복 더위 때 팔려고 개 키우는 사람들에게 이 개들이 상품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걸 교육할 필요도 있고요. 정부가 제도로 바닥을 깔아주면, 문화를 선도하는 건 기업의 몫이니까 적극적으로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겠죠.”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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