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것은 이번 타깃은 화웨이였지만 만약 삼성전자를 향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란 점이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IT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밑바탕엔 미국의 특허와 기술,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PC 운영체제 미국이 장악
화웨이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미국이 주도권을 쥔 모바일·PC의 운영체제(OS·Operating System) 공급이 끊겼기 때문이다. OS는 전자기기의 심장 혹은 영혼에 비유되는 시스템 구동 소프트웨어다. 모바일과 PC OS 모두 미국 기업이 전체 시장의 93~98%를 장악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구글 안드로이드(74.9%)와 애플의 iOS(22.9%) 외엔 사실상 대안이 없고, PC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79.2%)와 애플의 맥OS(14.6%)가 아니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화웨이의 자체 OS론(論)이 힘을 받지 못하는 것은, 미국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따라잡을 수 없는 공고한 생태계(生態系)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현재 구글의 플레이스토어에는 전 세계 개발자들이 만든 210만여개의 앱이 올라와 있다. 애플 앱스토어 역시 180만여개의 앱을 보유 중이다. 화웨이의 자체 OS 훙멍에서는 구글·애플의 앱을 이용할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최근 미 행정부의 제재에 발맞춰 화웨이의 신규 주문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OS 공급을 끊었다. 화웨이 기기가 사실상 깡통이 된 셈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세계 1위 스마트폰 업체인 삼성전자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삼성은 2004년 스마트폰용 OS 안드로이드를 개발한 앤디 루빈(Rubin)이 구글보다 먼저 찾아와 제휴·투자를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2주 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인수했다. 이후 삼성은 소프트웨어 종속의 무서움을 깨닫고 자체 OS인 바다를 만들었다. 또 인텔과 협업한 타이젠 개발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현재 삼성은 구글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사실상 갑(甲)을 모시는 셈이다. 구글과 서비스 영역이 겹치는 자체 인공지능 비서 '빅스비'를 탑재할 때도 양사 간 미묘한 갈등이 빚어졌다. 폴더블폰인 '갤럭시폴드' 개발 과정에서도 구글이 최적화된 안드로이드 OS와 전용 앱 개발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사실상 출시가 불가능했다. 오는 7월 폴더블폰 '메이트X'를 내놓을 계획이었던 화웨이도 구글과 거래가 끊기면서 출시 자체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시스템 반도체도, 반도체 특허도 미국이 1위
미국이 보유한 또 하나의 무기(武器)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같은 한국 반도체 기업은 데이터 저장공간 역할을 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강자(强者)일 뿐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선 철저한 후발 주자다. 스마트폰 두뇌인 모바일 AP 1위는 미국의 퀄컴, PC 두뇌인 CPU(중앙처리장치) 1위는 미국 인텔이다. CPU 시장의 2위인 AMD 역시 미국 업체다. 반도체 생산시설 없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시장에서도 미국 업체가 전체의 68%를 차지한다. 급성장 중인 중국은 아직 13% 수준이고 한국은 1%도 되지 않는다.
반도체 설계도에 깔린 원천 기술 역시 미국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자산(IP) 업체로 삼성·애플·화웨이 등 전 세계 1000여곳에 반도체 설계도를 제공하는 영국의 ARM이 화웨이와 거래를 끊은 것도 '우리의 설계도엔 미국의 원천기술이 깔려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특허청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5년(2011~2015년)간 반도체 분야 특허출원 건수가 1만129건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이어 일본·한국·대만의 순이다.
박순찬 기자(ideachan@chosun.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