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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말로만 "일하는 국회"… 툭하면 무단결석에 얼굴도장만 찍기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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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남은 20대 국회 출석률 분석 / 정수 300인 본회의 5일 252명 참석 / 마지막 안건 표결 땐 160명만 남아 / 한국당, 본회의·상임위 출석률 평균↓ / 민주평화당은 본회의 출석률 최하 / 통보 없이 불참 땐 3만원 감액이 전부 / 세계 62개국 국회의원 회의 출석 의무화 / “정치 불신 해소·입법 생산성 높이려면 / 경제·정치적 제재 가해 출석 독려해야”

세계일보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10차 본회의를 개의합니다.”

지난 4월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의 ‘출발 신호’가 어수선한 장내를 가라앉혔다. 이어 둔탁한 의사봉 소리가 세 차례 울렸다.

이날은 여야 간의 긴 진통 끝에 열린 ‘3월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답게 상정된 안건만 115건에 달했다. 이뿐만 아니다. 4·3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경남 창원 성산의 정의당 여영국, 통영·고성의 자유한국당 정점식 의원이 국회에 입성해 8개월여 만에 의원정수 ‘300명’이 본회의 소집 대상이 됐다.

하지만 국회 ‘새내기’인 두 의원의 선서로 문을 연 본회의는 출석 점수에서 낙제점을 받으며 체면을 구겼다. 현재 국회 사무처는 국회의원들의 회의 출석률을 집계하지 않는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안건 표결 시 최대 인원은 252명으로 출석률은 84%였다. 하지만 마지막 안건을 표결할 때 재석 인원은 160명으로 의원정수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처럼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던 본회의는 낮은 출석률과 더불어 얼굴도장만 찍고 사라지는 이른바 ‘출튀(출석 먹튀)’가 난무했다. “싸워도 국회에서 싸우라”는 문 의장의 ‘격언’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20대 국회는 여야에서 앞다퉈 ‘일하는 국회’, ‘뛰는 국회’ 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일꾼 이미지를 부각해왔다. 하지만, 세계일보가 26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열려라 국회’를 통해 입수한 2016년 5월 30일부터 2018년 4월 11일까지의 ‘20대 국회 본회의 및 상임위원회 출결 현황’에 따르면 본회의 출석률은 전체 89.5%로 집계됐다. 이는 19대 국회(88.9%)보다 0.6%포인트 오른 것으로, 사실상 대동소이했다. 더구나 상임위 출석률은 83.3%로 본회의보다 낮았다.

정당별로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선전 속에 자유한국당은 출석률이 저조했고, 국회에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고 ‘무단결석’한 경우도 비일비재해 의정활동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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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시절에도 결석률 높아… 한국당, 국회 출석도 자유?

20대 국회 본회의 및 상임위 출석률에서 두 경우 모두 평균을 밑돈 정당은 한국당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당은 본회의 출석률이 86.6%, 상임위 출석률은 ‘꼴찌’인 80.4%였다. 의원별로 본회의 출석률이 80% 미만인 경우도 30명 중 14명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민주당은 본회의 출석률 93.4%로 정당 중에서 가장 높았고, 상임위 출석률도 85.8%로 한국당과 5.4%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민주평화당은 본회의 출석률이 86.3%로 가장 낮았지만 상임위 출석률은 86.7%로 가장 높았다. 정의당과 바른미래당도 본회의 출석률이 평균에 못 미쳤지만, 상임위 출석률에선 만회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이번 조사에선 소속 의원 수 100명 이상으로 ‘거대 양당’이라 불리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온도차가 확연했다. 두 정당은 여야 진영이 반대였던 이전 국회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민주당이 19대 국회에서 본회의 출석률 91.4%를 기록한 반면, 한국당은 전신인 새누리당 시절 87.9%를 기록했다. 두 정당의 격차는 20대 국회의 6.8%포인트에서 3.5%포인트 차로 좁혀졌다.

정치권에선 야당이 되면 집권여당을 향한 불만을 표출하는 동시에 ‘견제구’를 던지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본회의 결석’ 카드를 써 왔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근래의 한국 정치사에선 이런 통념이 먹히지 않았던 셈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에 대해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사회 변화는 결국 정치가 주도해서 일어난다. 보수 성향의 정치집단은 입법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소극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출석률이 저조하면 입법토론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해 의정활동의 질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만 집착해 국회를 내팽개친다면 정치의 ‘실종’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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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결석해도 벌금 ‘3만원’… 의원들은 변명만

제아무리 모범생이라도 ‘개근’은 어려운 법이다. 이를 대비해 국회법 제32조(청가 및 결석) 1항은 의원이 ‘사고’로 국회에 출석하지 못하게 될 경우 사유를 적시한 청가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동법 2항은 무단으로 국회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시 특별활동비에서 결석한 회의일수에 상당하는 금액을 감액한다고 돼 있다. 표면적으로는 국회 출석에 대해 나름대로 제도적 장치를 둔 셈이다.

하지만 20대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들의 무단결석은 도합 2151회로 비일비재했다. 지난 5일까지 본회의가 121차례 열린 것을 감안하면 본회의가 한 번 치러질 때마다 17.7회나 무단결석이 발생한 셈이다. 정당별 의원 1인당 무단결석 횟수에선 한국당이 12회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바른미래당(6.9회), 평화당(6.2회)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한국당 의원들은 ‘무단결석 횟수 상위 11걸’(공동순위 포함 16명)에 12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은 1인당 무단결석 횟수가 2.3회로 적었다.

이런 현상은 현행 국회법에 국회의원의 본회의 및 상임위 출석 의무조항이 없을뿐더러 결석에 따른 ‘페널티’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일례로 의원이 회의에 사전 통보 없이 불참할 경우 특활비에서 국회 회의 참석수당(3만1360원)을 빼는 데 그친다. 추가 제재는 없다.

국회는 ‘입법 및 정책개발 우수 국회의원’(우수입법 의원)을 선정할 때 정량평가 항목에 회의 출석률을 넣는다. 그렇지만 출석률은 국회 내부 평가에만 활용될 뿐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일일이 수작업으로 국민 ‘알권리’를 충족하고 있다. 더구나 국회의장 직속 혁신자문위원회가 정량평가 항목을 올해부터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 출석률을 제고할 요인이 없어지는 추세다.

본회의 무단결석이 잦았던 의원들도 ‘할 얘기’가 많다. ‘무단결석’이 많은 것으로 분류된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실의 관계자는 “우리 당의 의원 수가 적은 편이다. 신생정당이고, 장외 대정부 투쟁 등 행사가 많았다”며 “앞으로는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최대한 본회의에 참여하겠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실 관계자도 “2017년 대선 출마와 당대표, 지방선거 등을 도맡는 과정에서 출석률이 낮았다”고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이 외에 무소속 서청원, 한국당 한선교 의원 등은 뚜렷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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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 의무화’ 연구용역 제안에도, 국회는 묵묵부답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2017년 본회의와 상임위의 출석 및 표결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두고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의뢰해 연구용역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해 12월에 국회에 제출된 보고서는 국회법에 △출석의무 △표결의무 △회의록에 결석 의원 적시 △결석 시 벌금 강화의 필요성 등 개정 조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햇수로 2년이 지나도록 국회법은 요지부동이다. 국회가 스스로 요구한 조사 결과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취급하는 실정이다.

당시 연구용역의 책임자였던 배병일 영남대 교수는 26일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이 직무수행을 위한 회의에 출석하지 않으면 세비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경제적 제재와 동시에 정치적인 제재를 가해 출석을 독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2016년 17대 국회에서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그는 “국회 규칙인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에는 국회의원의 출석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윤리심사자문위원회 위원을 2년 동안 하고, 위원장을 3개월 정도 맡으면서 윤리심사자문위가 국회의원의 결석을 이유로 징계하는 데 자문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하는 국회의 전제가 되는 것이 국회의원의 출석이다. 결석에 대한 징계규정이 사실상 사문화돼 있는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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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교수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62개국에서 국회의원에게 회의 출석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과 더불어 아시아에선 일본과 호주가 대표적이다. 배 교수는 “일본 등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내각불신임으로 국회의원의 임기가 언제든지 단축될 수 있고, 수시로 선거가 닥칠 수 있다. 국회의원의 출석률이 의정활동의 지표로서 매우 중요하다”며 “이에 비해 한국은 국회의원의 임기를 단축할 수 있는 제도가 없어 당선된 뒤 4년 동안은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이에 출석 등에서 무시해도 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면서 “국민의 정치 불신을 해소하고 국회가 입법 및 대의기구로서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출석의무화는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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