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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포스트 하노이]④ 엄구호 "북·중·러 반미 전선은 대한민국 외교 참사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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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딜(no deal)’로 끝난 2차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미국식 계산법을 맹비난했고 선전 매체를 동원해 문재인 정부도 압박했다. 서울과 워싱턴에는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극도의 불신이 자리잡았다. 한반도 비핵화 시계는 다시 돌아갈까. 한·미 정상은 11일 워싱턴D.C에서 회담을 열어 ‘포스트 하노이’ 전략 마련에 시동을 걸었다. 김정은 북한 위원장의 방러 임박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북설이 나온다. 디지털 편집국은 정부의 외교 정책을 점검하고 북핵 해법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국내외 외교안보 전문가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버락 오바마의 대러 강경책을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3월 29일 만난 엄구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교수는 올해 95세를 맞은 외교 백전노장의 말을 인용했다. 미국이 러시아를 이용해 중국을 견제해야 할 타이밍에 러시아를 압박함으로써 러시아가 중국의 파트너가 됐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을 통해 북·중·러 반미(反美) 전선 구축 가능성을 보여주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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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구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교수/류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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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엄 교수는 푸틴의 ‘힘의 외교(시리아 내전 개입, 크림반도 합병 등)’ 방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한반도의 중재자로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는 중국한테 맡기는 일종의 분업 외교를 하고 있다"면서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구호 교수는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학사,석사, 박사)하고 모스크바국립대 1호 한국인 유학생으로 이 학교에서 국가관리학과를 전공(법학 박사)했다.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소장, 중소연구 편집인,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사업 유라시아 연구사업단장, 유라시아연구 저널(Journal of Eurasian Studies) 편집장을 맡고 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원장,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을 역임했다. 4월 17일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 하노이 미·북 회담 결렬에 대한 러시아 측의 반응은.

"러시아는 지난해 미·북이 싱가포르 회담 직후 발표한 센토사 선언이 2017년 중·러가 발표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단계적 해결 구상(중·러 비핵화 로드맵)과 유사하다고 봤다.

① 미·북 관계 개선 ② 한반도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 노력 ③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진전을 위해 노력할 것 등을 담은 센토사 선언을 단계적 해법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하노이 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을 버리지 않으면 다른 어떤 것도 단계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 외교가는 다소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 러시아는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나.

"지금까지 러시아 외교·안보 전문가 수십 명에게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에 관해 물어 봤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러시아는 북한의 완전 비핵화는 비현실적이며 북한 비핵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북한이 취한 조치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보장도 필요하다고 본다.

올 초 아나톨리 안토노프 워싱턴 주재 러시아 대사가 ‘러시아는 결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말을 강조한 데는 뉘앙스가 있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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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 16일 공군 제1017군부대 전투비행사들의 비행훈련을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2019년 4월 17일 보도했다. 김정은 뒤편으로 북한이 운영하는 수호이-25 전투기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조선중앙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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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23~25일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난다고 한다.

"푸틴이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것은 푸틴 입장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뭔가 얻을 것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러시아가 (미·북 회담 결렬에 따른) 기회주의적 행동을 한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우선, 러시아는 2017년 ‘화염과 분노’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북한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 또 단계적 비핵화 해법과 다자간 안보 체제를 강조하려 할 것이다. 그동안 미·북 정상회담에 무게 중심이 쏠리다 보니,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 플랫폼에 관해서는 언급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였다.

김정은의 의도는 분명하다. 미·북 정상회담 재개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를 지지 세력으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중 무역 전쟁으로 북한 지원에 소극적인 중국에도 압박으로 작용한다. 또 북·중·러 전선 구축 가능성을 보여줘 대미 협상 자산으로 활용할 것이다."

― 북·러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무엇일까 .

"향후 미·북 협상 전략과 더불어, 경제 지원 및 협력이 가장 중요한 안건이 될 것이다. 현재 북한 경제는 매우 어렵다. 북·러 교역액의 70%가 역청탄인데, 러시아산 역청탄이 제때 수입되지 않아 북한이 철강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에 따르면, 자국에 체류 중인 북한 노동자 수는 지난해 3만명에서 올초 1만1490명으로 줄었다. 유엔 제재 때문이다. 남아 있는 북한 노동자들도 연말까지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연간 2억~3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를 벌어왔다. 김정은은 단기 체류 비자 발급 등 일종의 편법으로 제재를 피하는 방안을 푸틴과 논의할 것이다.

곡물 지원, 남·북·러 협력 사업도 안건이다. 북한은 지난해 러시아로부터 30만 톤의 식량을 지원 받았는데, 10만 톤을 추가로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박근혜 정부 때 독자적 대북 제재로 투자를 중단한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법도 협의할 것이다."

―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의 중재자 역할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한반도 문제는 러시아 외교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일종의 분업 외교를 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해 러시아는 중국의 입장을 지지한다. 중동, 동부 유럽에 관해서는 중국이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한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개입, 크림반도 병합, 동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이미 충분히 골치 아픈 상황이다. 미국과 서유럽의 제재로 경제 상황도 좋지 않다. 유엔 제재로 양국 간 금융 거래도 쉽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가 북한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북한이 조속히 대화에 복귀하도록 푸틴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을 설득해줄 것을 러시아 측에 요청할 필요가 있다. 또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러시아의 대북 지지 성명이나 북·러 위성 공동 개발 합의 성명이 나오지 않도록 러시아에 요구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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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2018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 끝)가 참석해 토론을 하고 있다./동방경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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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푸틴이 동방경제포럼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을 동시에 초청했지만, 둘 다 불참했다.

"푸틴이 참석하는 3대 러시아 포럼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은 유럽과의 협력을, 예카테린부르크 이노프롬은 혁신산업협력을,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은 아시아와의 협력을 목표로 한다.

동방경제포럼이 출범할 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석해 크게 탄력을 받았다. 지난해 푸틴은 남북 정상을 초청해 동방경제포럼의 흥행을 노렸지만, 문 대통령과 김정은 모두 가지 않았다."

― 왜 가지 않았나.

"‘최고 존엄(김정은)은 다자 회담에 가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여러 정상이 모이면, 단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푸틴이 동방경제포럼에 다시한번 김정은을 초청할 수도 있다. 물론 김정은이 수락할 가능성은 작다.

나는 김정은이 국제 사회를 경험하고 학습하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고 본다. 국제 사회는 김정은을 외교 무대로 계속 끌어내야 한다.

러시아는 극동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북한을 활용하고 싶어한다. 러시아 외무성의 발표를 보니, 매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상품전을 하겠다고 한다. 동방경제포럼에 김정은이 간다면, 남·북·러 삼각 협력을 위한 획기적인 플랫폼이 만들어질 것이다."

― 미·러 관계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한·러 관계는 미·러 관계를 따라간다. 미·러 관계가 나쁘면 한·러 사이에도 별로 할 게 없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버락 오바마의 대러 강경책을 비판했다. 푸틴을 악마화해 대러 제재를 강화하는 바람에 러시아가 중국의 ‘주니어 파트너’가 됐다는 것이다.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이용해 소련을 견제한 것처럼 러시아를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는 지혜를 발휘하지 못했다.

트럼프가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은 ‘반(反)오바마 정책(ABO·Anything But Obama)’의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 의회에서 대러 제재를 고수하고 있어 트럼프 시대에도 미·러 관계는 좋지 않다.

미·중 갈등이 더 커지고 러·중이 밀착하는 가운데, 북한이 러·중에 편승하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일종의 북·중·러 반미 전선이 구축되는 외교 참사 상황만큼은 막아야 한다."

― 푸틴도 시진핑처럼 종신 집권을 노릴까.

"별로 없다고 본다. 푸틴은 2024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72세가 된다. 러시아 국민의 반감도 크다. 푸틴이 ‘상왕’이 돼 막후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시나리오 정도 가능할 것이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정치·외교 분야의 세대 교체가 한창이다. 보다 민주적 지도자가 차기 러시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러시아는 지금처럼 남북한 등거리 외교 원칙을 고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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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이 2019년 4월 1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시찰하고 있다. /일본 F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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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비핵화 해법은.

"우리 정부는 ‘핵 확산을 방지하자’라는 명분으로 국제 사회, 특히 중국을 잘 설득해야 한다. 북핵은 일본과 대만의 핵무장을 부른다. 남북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보다 동북아 평화 체제의 붕괴를 막자는 메시지가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이 있다.

소련도 결국 시장 때문에 망했다. 북한 시장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한편, 남·북·러 가스관 연결 등을 통해 북한의 대외 의존성을 높여야 한다. 북한이 국제 사회를 속이면 최대한의 압력으로 보복할 수 있는 스냅백(snapback) 조항을 활용하면 좋다.

북한이 참여하는 다양한 의제의 콘퍼런스도 열 필요가 있다. 북한이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연착륙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다. 다자 콘퍼런스에서 환동해국의 해항로 안전을 논의할 수 있고 유엔이 후원하는 평화 콘퍼런스를 개최할 수도 있다.

이런 노력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만 되면 다 좋은가?’라는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 체제를 맞바꿔야 할 수도 있다. 주한미군 철수, 중·러의 한반도 영향력 확대 등 한국에 불리한 외부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 중국의 부상으로 국제 질서가 바뀌고 있다.

"중국의 부상이 북한의 핵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 ‘중국에 대한 의존성을 완전히 줄이고 인도와 거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 그룹도 봤다. 정말 풀기 어려운 방적식을 풀어야 한다.

나는 한국이 ‘중간국’ 외교의 기반을 만들 때라고 본다. 한국은 한반도라는 위치 권력(Positional Power)을 쥐고 물류 등 경제 분야에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일종의 미들 파워(Middle Power)를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의 큰 대륙으로 통합해나가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러시아의 ‘대유라시아 파트너십’, EU의 ‘커넥티비티 이니셔티브’ 등이 대표적이다. 왜 북한을 통해서만 대륙에 연결되는 기회를 찾으려고 하나. 북한을 우회하는 방법으로도 대륙이 통합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신북방’과 ‘신남방’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신북방과 신남방을 연결하는 데서 새 기회가 있다. 외교다운 외교를 해보자는 거다."

☞ English Summary

EOM Gu Ho, professor of the Dept. of Russian Studies at Hanyang University, argues that deterioration of the US-Russian relationship caused Russia to partner up with China, and that North Korea's pitching into this action to form a ‘Russo-Sino-North Korean anti-US front’ would be the worst-case scenario for South Korea. Professor EOM also suggests that South Korea should seek opportunities in Eurasia integration movements to become a middle power, by fully making use of its ‘positional power’.

[류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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