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년기 전략가, 행정가로서는 탁월했던 이해찬이지만, 정치 지도자로서의 평판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지난해 다시 당대표가 됐을 때 그의 부활이 당의 부활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그에 관한 불안감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운 나쁘게 쇠퇴기에 당을 맡은 것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고정된 이미지와 그가 종종 잘못 던지는 메시지는 그가 민주당을 떠받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입증한다. 지난 17일 그가 다음 총선에서 260석쯤 승리할 수 있다고 한 것도 그의 정치 감각이 시험대에 올랐음을 말해준다.
시민은 선택하는 자, 정당은 선택받는 자라는 지위는 교체불가다. 그런데 이해찬은 이걸 180도 뒤집었다. 자기는 선택하는 자가 되고, 시민은 선택당하는 자가 됐다. 시민이 매긴 성적표를 받아야 할 자가 스스로 최고 성적을 매겨 시민에게 내민 것이다. 수험생에게 미리 정답을 알려주고 답안지에 그대로 쓰라고 하는 것 같은, 저 오만함은 결코 민주당의 무기력증과 어울리지 않는다. 대승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지금 그게 안 보인다. 단지 허풍일까? 허풍은 불안감의 반영인가, 현실 감각을 잃은 결과인가?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은 아들 살해범을 용서하기로 하고 교도소를 찾아간다. 그러나 범인은 이미 하나님께 눈물로 죄를 회개했고 용서를 받았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한다. 자식도 잃고 용서할 기회도 잃은 전도연은 교도소를 나오다 그 자리에 쓰러진다. 260석? 심판을 부르는 주술일지 모른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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