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세상읽기]스웨덴의 ‘아빠육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웨덴의 육아휴직 문제를 연구하느라 경험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아이들이 노는 현장을 방문했다.

“이미 육아휴직으로 3개월을 보냈어요. 아이랑 함께 1개월 더 보낼 겁니다. 만일 둘째 아이를 낳게 되면 그때는 더 오랫동안 육아휴직을 하고 싶어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예전보다 신경도 더 써야 하고 개인 시간도 많이 못 내지만, 마음은 굉장히 즐거워요. 아내의 마음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요.”

경향신문

1987년생 뵤른(32)은 13개월 된 딸아이의 아빠로, 스웨덴의 화장지 제조용 기계 회사(민간기업)에 다닌다. 아내는 사회보험 기관에 다닌다. 스웨덴은 1974년부터 육아휴직제를 시작, 1995년부터는 아버지 할당제를 도입했다. 2016년부터 아버지는 최소한 3개월을 쓸 수 있고, 쓰지 않으면 소멸된다. 현재 스웨덴 법은 8세 미만의 아이 양육을 위해 아이 1명당 부모 총 16개월을 육아휴직으로 보장한다. 한국의 아빠들이 육아휴직자의 약 15%임에 비해, 스웨덴 아빠들은 45%에 이른다.

내가 뵤른과 그 딸아이를 만난 곳은 인구 10만의 소도시 칼슈타드에서다. 스웨덴에는 지역마다 있는 무상 유치원 외에도, 지자체나 종교기관이 운영하는 ‘열린 유아원’ 같은 것이 있다. 모두 무상이다. 뵤른도 여기서 만났다. 물론, 뵤른 외에도 10여 명의 엄마, 아빠들이 2층의 넓은 방에서 아이들이 장난감이나 미끄럼틀, 모형 집 등과 함께 나름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알파벳이나 공부와 연관된 건 전혀 없다. 혹시 아이가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일어나면 짧게 칭찬할 뿐이다. 또 부모들은 아이들과 같이 놀기도 하고 서로 아기자기한 얘기도 나눈다. 삶의 시간을 잘 누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기는 월, 수, 금 각 5시간씩 문을 연다. 특히 수요일엔 유아들이 노래하며 율동을 따라 하는 ‘리드믹’도 있다. 점심때가 되면 놀이방 옆에 딸린 식당 방에서 밥을 먹는다. 엄마만이 아니라 아빠도 아이 밥 먹이기 외에 기저귀 갈기까지 척척 잘도 해낸다.

뵤른에게 물었다. “열린 유아원에 오지 않는 날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죠?” 조금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집에 머무는 경우도 있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과 함께 모이기도 해요. 날씨가 좋아지면 놀이터나 놀이공원에도 나가지요.” 아니나 다를까, 시내 곳곳에 나가도 유모차를 이끌고 도심을 여유롭게 걸어 다니는 엄마, 아빠들을 자주 본다. 놀이터 곳곳에도 엄마, 아빠들이 수다를 떨며 아이들을 지켜본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단독 주택의 뒷마당 잔디밭에서도 아이들이 모여 놀 것이다.

이 모든 장면은, 아직 ‘아빠육아’보다 엄마들의 ‘독박육아’가 많은 한국에서 온 내겐 신선한 충격이다. 약 20년 전의 미국인도 마찬가지였다. 망너스(48)는 이렇게 말했다. “약 20년 전 이곳을 방문했던 한 미국 여성이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아빠들을 보고 ‘혹시 저 사람은 게이인가요?’라고 해 충격을 받은 적이 있죠.” 물론, 스웨덴도 모든 남성이 육아나 가사에 평등하게 참여한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봐도, 북유럽은 성 평등 수준이 높다.

그러나 이런 성 역할 측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직장 분위기다. 한국은 남성이나 여성이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경우 ‘이기주의자’나 심지어 ‘범죄자’로 간주된다. 법적으로는 오히려 스웨덴보다 긴, 부모 총 24개월이 보장되지만 실제 사용은 매우 어렵다. 상사나 동료들의 무언의 압력도 문제고, 막상 육아휴직을 쓰고 나오면 직장 안정성도 크게 위협받는다. 특히 민간, 중소기업일수록 심하다. 물론, 육아휴직 직전 급여의 80% 정도가 보장되는 스웨덴에 비해 한국은 50% 정도 수준이라 경제적 측면도 걸림돌이다. 심지어 한국은 가정의 가치보다 노동의 가치에 더 비중을 두는 일중독자 천국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육아휴직을 꺼리는 한국 남성들에게 자유롭게 말해 보라는 나의 주문에 스웨덴 아빠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커버립니다. 지나간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아요.” “나중에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라며 다정하게 다가오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후회하지 말고, 때를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내와 소통을 많이 하니 아이와의 관계는 물론 부부관계도 훨씬 좋아지지요.”

그렇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한다’라는 법언(法言)이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인생, 그 삶의 시간을 어떻게 잘 누릴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제, 그것이 가능하게 하려면, 우린 무엇을 해야 하나?

강수돌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