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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책 처방해 드립니다]좋아하는 일을 ‘평생 한다’는 것…좋아하는 일로 ‘성공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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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

김보라 지음

북저널리즘 | 118쪽 | 1만2000원


남편은 서른두 살 적지 않은 나이에 전직을 했습니다. 요리에서 그림으로, 능력 있는 주방장에서 소속도 월급도 없는 프리랜서로, 언제쯤이면 먹고살 만해진다는 보장도 없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든 지 2년이 지났습니다. 아직 성과는 없어서, 그림을 계속하고 싶다는 말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처음엔 호기롭게 꿈을 응원해주겠다 했지만 기약 없는 이 지난한 과정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흔들렸거든요.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은 영화감독 지망생 15인의 이야기를, <데뷔의 순간>은 영화감독 17인의 데뷔 과정을 담은 책입니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10년 정도의 지망생 기간을 거친다고 해요. 그저 버텨야 하는 시간. 그럼에도 불안정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나가는 힘이 무엇인지 이 책들은 묻습니다.

놀라운 건 지망생인 이들이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저마다 현실적 방법을 모색하며 생활과 창작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영화를 하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았기에 경제적 어려움은 디폴트 값으로 받아들인 거죠. ‘보통의 삶’을 사는 나도 불안한데, 영화감독 지망생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지레 짐작했던 저자에게 그들은 날카롭게 묻습니다. 그렇게 사나, 이렇게 사나 다 불안한데 왜 하고 싶은 걸 안 하고 사냐고요.

경향신문

데뷔의 순간

한국영화감독조합 지음

주성철 엮음

푸른숲 | 428쪽 | 1만5800원


영화감독 17인의 대답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닥치는 대로 부딪치며 여기까지 왔지만 잘될 거라는 믿음은 지금도 없다고, 그럼에도 가장 나를 덜 지치게 했던 일이 영화였던 건 분명하다고(류승완 감독). 행복해지기 위해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 욕망해서는 안 될 것들에 대해 미련을 갖지 않기로 결심했다고요(변영주 감독).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해주었더니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자기도 그림으로 성공하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뿐이라고. 경제적 어려움에 힘들어 하는 저를 보면서 자신의 무능함에 괴로운 적은 많았지만, 그림 그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요.

경향신문

아직 성과가 없는 걸 보면 재능이 없는 거나 다름없다, 요리로도 먹고살 수 있는데 그림은 취미로 그리면 안되냐, 제가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생각났습니다. 남편이 바란 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는 것’이었는데, 제가 바란 건 ‘그가 좋아하는 일로 성공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에게 지난 2년은 그저 견뎌야 하는 불완전한 시간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나아가는 과정의 시간이었습니다. 시선을 ‘결과’가 아닌 ‘과정’에 두니 ‘벌써 2년’이 ‘고작 2년’이 되었습니다.

“히치콕은 ‘영화란 지루한 부분이 커트된 인생’이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많은 이들의 삶은 대부분 지루하고 단조로운 나날의 연속이다. 삶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 116쪽)

정지혜 사적인서점 대표·북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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