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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中, 입국 거부 트럼프 고문 책 '백년의 마라톤' 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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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최근 입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 마이클 필스버리 미국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연구센터 소장이 쓴 저서 ‘백년의 마라톤’에 담긴 중국에 대한 경고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비공식 고문을 맡고 있는 필스버리 소장(사진)은 2015년에 펴낸 ‘백년의 마라톤’에서 △화웨이로 추정되는 중국 통신장비업체가 이라크전쟁 때 유엔안보리 제재를 위반하고도 중국 당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고 폭로하고 △중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미국의 대(對)중국 정책이 패착을 두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진입했다는 관측 속에 화웨이 제재와 합의문 번역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무관치 않다. 미국이 화웨이 제재에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중국과의 합의문 조율에서 영어와 중국어 번역의 오류를 줄이는데 중점을 두는 배경이기도 하다.

필스버리 소장은 책에서 2000년대초 이라크 전쟁 때 중국이 이라크의 방공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통합하고 공습 등에서 보호해줄 수 있는 광섬유 망을 건설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우리 조종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이라크를 돕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당시 유엔 중국 부대사를 맡던 선궈팡(沈国放)은 이에 대해 "소문이다.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폭격을 변명하려는 것이다. 군사든 민간부문이든 이라크에서 일하는 중국인은 한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2년 이라크가 유엔에 제출한 금지무기 프로그램 보고서에서 중국과 이라크 불법 관계가 사실로 확인됐다고 필스버리 소장은 전했다.

필스버리는 화웨이를 적시하지 않고 통신장비업체라고만 언급했지만 관련 대목 각주에 달린 미국 군사 전문 언론인 빌 거츠의 책 ‘배반: 미국의 친구들과 적들이 어떻게 비밀리에 우리의 적들을 무장했는가’에는 미국의 조종사를 위험에 빠지게 한 이라크 광섬유 망을 소개하면서 화웨이가 이라크에 사무실을 유지하고, 이라크 관리들이 2000~2001년에 화웨이를 방문했다고 전했다. 또 2001년 3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상원청문회에서 "중국이 비공식적으로는 중국 기업들의 이라크 광섬유 망 건설 사실을 인정하고, 해당 기업에 이를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고 빌 거츠는 전했다.

이와관련, 게리 미홀린 위스콘신대 교수는 2002년 9월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WMD) 프로그램과 수출 통제’ 하원 청문회에서 화웨이가 이라크 공습망 구축에 도움을 주고 이라크 폭격에 나갔다가 살아돌아오지 못한 미국 조종사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수출 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모토로라, DEC, IBM, 휴렛팩커드, 선마이크로시스템스, 퀄컴, 루슨트테크놀로지 등이 고성능 컴퓨터를 판매하거나 합작을 통한 기술이전 등을 통해 화웨이에 도움을 줬다며 이런 수출로 미국 기업들은 돈을 벌긴 했지만 동시에 미국 조종사들의 목숨이 위협받게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화웨이 제품 사용 배제와 화웨이에 대한 기술 수출 금지 등으로 화웨이를 공격적으로 압박하는 데는 기술패권 전쟁 이상의 배경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선일보

필스버리 소장은 ‘백년의 마라톤(사진)’에서 또 중국어의 의미적 모호성을 지적하며 "중국어를 어떻게 해석할지 결정하는데 따라 본질적인 오해가 유발될 수 있다"며 1971년 10월 당시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베이징을 비밀리에 방문했을 때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나눈 대화의 오역을 사례로 들었다.

당시 저우언라이는 "미국은 바(覇⋅패)입니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을 어떻게 보는지를 엿볼 수 있는 언급이었지만 "미국은 리더입니다"로 통역됐다. 필스버리 소장은 바는 중국 전국시대에서 유래한 말로 ‘전제군주’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리더는 별다른 저의가 느껴지지 않는 말이라며 당시 통역자가 훗날 키신저가 불쾌할까봐 ‘바’의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털어놓은 사실을 전했다.

필스버리 소장은 키신저가 바의 의미를 알았다면, 그래서 중국이 실제로 미국을 어떻게 보는지 알았다면 (미⋅중 수교를 가능케 한 분위기를 만든)리처드 닉슨 정부가 그렇게 포용적으로 중국을 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인식을 하고 있는 필스버리 소장은 지난 3월 "중국어 번역에는 많은 뉘앙스가 있고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한 선택이 있다"며 미⋅중 무역협상에서 영어와 중국어의 해석차이로 오해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합의안 초안에 중국어 판이 없는 게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국은 합의문을 놓고 오해와 왜곡을 막기 위해 영어와 중국어 버전을 함께 만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월 말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합의문에 담길 농업 이슈와 관련한 단어 하나를 놓고 2시간 넘게 논의했지만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중국어에 대한 이해 부족이 잘못된 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미국측의 경계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필스버리 소장은 "미국에 있는 소위 중국 전문가들 대다수는 중국어를 몇 마디 밖에 못한다"며 "유명한 중국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방식대로 중국어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중국 말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게 중요하지만 반세기가 넘는 동안 미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필스버리의 고백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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