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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선천성 ‘로 증후군’ 장애인 8살 민호가 그룹홈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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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 태어났을 때부터 돌본 사회복지사 강지우씨

그룹홈 만들어 민호 데려오려 했지만 거절당해

보건복지부 “장애 아동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돌봐야”



한겨레

사회복지사 강지우(60)씨가 8살 김민호군을 처음 만난 건 2011년이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태어난 김군은 한달 반 만에 버려져 강씨가 일하는 전라남도의 한 아동양육시설로 왔다. 민호는 ‘로(Lowe) 증후군’이란 병을 안고 태어났다. ‘로 증후군’은 선천성 백내장, 신생아나 유아기의 근육긴장저하와 이후 지능 저하, 콩팥세뇨관 기능장애 증상을 보이는 유전성 희귀 질환이다. 강씨는 갓 태어난 민호를 데리고 전남과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오갔다. 민호가 3살 때 열이 펄펄 끓어 병원에 데리고 가니 의사는 “패혈증으로, 조금만 늦었으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고난을 함께 겪다 보니, 김군은 어느덧 강씨에게 친아들같은 존재가 됐다. “저는 민호 숨소리만 들어도, 표정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있어요.”

그런 강씨와 민호가 지난해 예상치 않은 생이별을 했다. 지난해 8월 강씨는 서울 구로구에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을 차렸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강씨는 “민호를 서울에 데려오면 병원도 더 편하게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고 했다. 강씨는 현재 이곳에서 15살과 12살 남자아이 2명을 돌보고 있다. 그러나 강씨는 정작 민호를 그룹홈에 데려오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가 장애 아동은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돌봐야 한다는 보건복지부 지침을 들어 민호의 그룹홈 입소를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2018 아동보호서비스 업무 매뉴얼을 보면 ‘아동 공동생활 가정(그룹홈) 운영시 장애 등급을 받은 아동의 경우 장애인 부서로 의뢰해 장애인 시설에서 보호하도록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서울시 아동복지팀 관계자는 “강씨의 사연을 충분히 고려해 봤지만 장애 아동의 재활 등 여러 가지 여건을 생각했을 때 그룹홈 입소는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시설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발생하면 시에서 시설장에게 발생 사실을 알리고 해당 아동을 돌볼 수 있는지 여부를 묻는 방식으로 입소 절차가 진행된다. 특정 아이를 그룹홈으로 데려오는 방식으로 입소를 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도 올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지난 1월엔 민호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고 며칠 우리 그룹홈에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승인도 받지 않고 선입소를 했다며 (서울시가) 난리를 치더라고요. 결국 며칠 데리고 있다가 다시 시설로 보냈는데 다음날 민호한테 탈이 났어요. 선입소가 잘못됐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민호를 바로 시설로 보낸 게 후회됐어요. 조금만 더 데리고 있을걸…. 민호는 염증에 취약한 아이입니다. 비뇨기과와 이비인후과 등 할 것 없이 병원을 자주 가야 하는 아이인데 민호가 어디가 아픈지 가장 잘 아는 건 저예요. 그런데도 민호가 장애 2급이라는 이유로 시설 안에만 가두는 사회는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강씨는 눈물을 흘렸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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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는 지난달 28일 “보건복지부 규정은 장애 아동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강씨는 “보건복지부 규정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36조 장애 아동에 대한 차별금지를 위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에 반하는 조처”라고도 주장했다. 해당 법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 아동이 장애를 이유로 한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다른 아동과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필요한 조처를 다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씨는 “조금 전에도 민호가 있는 시설에서 ‘민호가 독감에 걸렸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메시지를 나에게 보내왔다. 민호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내지 않은 시설 선생님들은 민호를 잘못 돌봤다가 혹시나 잘못 될까 봐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장애 아동의 적절한 치료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규정이라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그룹홈은 장애 아동이 적절한 치료를 받기에 부적절한 환경이기 때문에 특수교사 등을 두고 있는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돌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재활과 치료 등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한 장애 아동의 경우 비장애 아동과 함께 시설에 있을 경우 장애 아동의 재활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다른 비장애 아동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며 “장애 아동의 특성에 맞게 돌봐줄 수 있는 장애 아동 거주 시설 혹은 장애 아동 그룹홈에서 돌봐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이에 대해 “돌보는 사람들의 전문적인 자격증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얼마나 오랫동안 봐 왔고 아이의 상태를 얼마나 잘 파악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오히려 시설에는 다른 아이들이 많아 민호 한명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이어 “민호는 한달에 2~3번 병원에 가야 하는데 희귀병질환센터가 있는 병원이 몇 군데 없다. 지난 1월 이후 민호는 병원을 한번도 가지 못했다. 특히 민호가 다니는 서울대병원에서 민호의 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어 민호가 서울에서 생활해야 치료도 더 편하게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강씨는 “민호가 투정을 부릴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시설에서 오래 산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보거나 기가 죽어 뭐를 사달라고 조르거나 떼를 쓰는 경우가 많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민호는 저만 보면 ‘이것 해달라’ ‘저거 사달라’ 투정을 종종 부리는데, 그만큼 저를 친엄마처럼 편하게 느끼기 때문인 거라고 생각해요.”

강씨의 소원은 민호가 자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처음 민호를 본 의사 선생님도, 주변 사람들도 민호가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걱정했어요. 선천적으로 뼈와 근육이 약해서 뭘 제대로 씹거나 삼키기도 어려워하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지금 민호가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맞는 치료와 재활을 적절하게 해준 결과로 특수학교에 다니며 친구들과 뛰어놀고, 스스로 밥도 잘 먹는 모습을 보면서 의사 선생님도 ‘기적’이라고 말하더라고요. 민호와 제가 만난 건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호가 혼자 힘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민호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돌보는 것이 제 남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오연서 권지담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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