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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인간에 대한 예의, 정순왕후 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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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이숙인의 앞선 여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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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서 뽑는 간택(揀擇)으로 왕실 가족의 배필을 구하는 관행은 세종 때 시작되었다. 여자를 세워놓고 무슨 물건 가리듯 하는 것은 당사자로선 상당히 모욕적일 법하다. 아주 대놓고 거부 의사를 밝힌 인사들이 있었지만 이 관행은 왕조의 거의 마지막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처음에 왕이 “세계(世系)와 부덕(婦德)도 중요하지만 외모도 좋아야 한다”며 간택을 제안하자, 재상 허조는 “얼굴 모습을 취하는 것이지 덕을 취하는 것은 아니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선조 때 이이도 간택은 “사족 처녀를 대접하는 도리로 보나 예의지국의 체모를 보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비판했다. 딸을 둔 사대부 가문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는데, 무슨 물건처럼 딸을 내놓게 되는 상황을 싫어하는 부류가 있었다면 국혼을 놓치지 않고자 재빠르게 움직이는 부류가 있었다. 게다가 서로 뽑히려고 자태를 경쟁하는 사대부 처녀들에 대한 시선도 곱지는 않았다. 간택으로 비빈이 된 경우는 혈통과 가문은 좋지만 대개 권력도 재산도 없는 집이 많았다.

단종 비(妃) 정순왕후(1440~1521) 송씨도 간택으로 왕비가 되었다. 임금 자리를 노리던 수양대군은 아직 혼인의 뜻이 없었던 어린 조카 단종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처녀 간택에 나선다. 이 행사는 수차례 거부 의사를 밝힌 임금의 눈을 피해 창덕궁 뜰에서 열렸는데, 오늘날 미스코리아를 선발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를 띠었다. 중앙무대 창덕궁에 선 처녀들은 서울을 비롯해 경상·전라·충청 등에서 예선을 거친 자들이었다. 각계의 유명인사로 꾸려진 심사단처럼 왕비 간택에서도 효령대군을 비롯한 종실 어른과 그 배우자, 세종과 문종의 후궁들, 시집 간 공주들 그리고 재상. 공식적인 명단만 해도 20인이 넘었다. 이들은 서로 의견이 달라 왕왕거리다가 이틀을 보내고서야 3명의 후보로 겨우 합의를 보았다. 최종으로 뽑힌 송씨는 궁중의 미곡을 관장하는 정6품 풍저창부사 송현수의 딸이었다. 왕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할 처족을 고른 것은 우의정과 좌의정을 사돈으로 둔 수양대군 기획이었다.

간택이 아니었으면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처지지만 권력인지 운명인지 그 장난으로 역사의 중앙무대에 서게 된 송씨. 온갖 수모를 겪고 통과했나 싶더니 이제 왕이 간택된 왕비를 거부하고 나섰다. 단종이 혼인 자체를 무효라고 하자 임금 곁에서 수작을 부린 것으로 간주된 성삼문이 국문을 받기에 이르는 등 일이 시끄러워졌다. 결국 세조의 뜻대로 국혼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왕비 송씨의 마음이 어땠는지 미루어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 후 그녀는 바람 앞에 등불 같은 국왕의 배필로 숙부 수양대군이 주최하는 종친 모임에 잠깐씩 등장하는 정도였다. 송씨는 15살에 왕비에 책봉되어 16살에 왕대비로 물러났으며 18살에 다시 서인으로 돌아왔다. 곧이어 죽임을 당한 아버지와 남편. 살아남은 것이 죽은 것보다 더 큰 고통이었을 이 여인의 비극은 단종 애사(哀史)에 묻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그녀는 ‘살 바를 잃지 않도록 돌보아야 할’ 존재로 간혹 언급될 뿐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그런데 죽음이 가까워진 여든의 정순왕후는 단종 사후 60여년 만에 나라에 상언(上言)을 제출한다. 그녀의 발언은 미리 작성해 둔 ‘노산군부인 별급문기’를 공론화하는 성격이었다. 간택을 기다리는 대상에서 서술되는 대상으로, 권력과 운명의 피해자로, 늘 수동태로만 존재해온 그녀의 마지막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자네 남편은 문종대왕의 유일한 외손으로 노산군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고 자네 또한 이 몸에게 잠시라도 마음을 거스르는 바가 없이 항상 정성껏 보살펴주었네.” 어린 나이에 수모와 공포를 딛고 살아낸 사람의 마지막 말이, 혈육은 아니지만 자신을 돌봐준 생질부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다는 인간적 예의를 다한 모습이라니. 불온의 딱지로 그 제사마저 금기된 노산군(단종)의 외롭고 억울한 넋을 돌본 왕후의 60여년은 사실상 유폐된 시간이었다. 그 모진 시련에도 잃지 않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한층 돋보인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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