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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장기 학술정책 세울 ‘학술전담기구’ 어떻게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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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에

학총·민교협 토론회 잇따라 열려

“부총리 산하 학술진흥원이 현실적”

“이공·인문계 공동 문제의식 가져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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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근 발표한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두고 학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17일엔 서울대에서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학총) 등이 주최하고 교육부가 후원한 토론회가 열린 데 이어, 18일엔 국회에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신경민·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4일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3개 부처가 발표한 활성화 방안 중에서 핵심적이고도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는 대목은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와 ‘학술전담기구 설립’ 등 두 가지다.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는 박사 취득 이후에 대학교수로 임용되지 않은 연구자들을 단기 1년, 장기 5년 동안 지원하며 연구에 전념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특히, 대학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연구자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관리주체에 대학 말고도 한국연구재단을 추가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장기 유형의 경우 중간평가를 거치는데, 이때 논문만이 아닌 대학 안팎에서 교육한 활동과 저서·번역서 비중도 확대했다. 2020년부터 연 800억원을 들여, 현재 3만명의 인문사회 분야 비전임연구자(시간강사)들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3천명을 선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민교협 토론회에 나온 조주연 서울대 미학과 강사는 “학술연구교수는 대학교수직의 획득 여부와 상관없이 새로운 직군의 창출로 이어져, 전문 학술 연구자의 확보와 육성 제도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구용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전남대 철학과 교수)은 “국가 학술을 위해 기여한 학자라면 지속적으로 이 직군에 있도록, 재지원을 허용하는 조항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발표에서 “학술정책 기획·평가 등을 추진하는 학술전담기구 설립을 관계 부처 등과 협의하여 추진한다”고 밝힌 대목에 대해서도 학계에선 큰 관심을 보인다. 학자들은 그동안 인문사회과학 쇠퇴의 주원인 중 하나로 학술정책을 구상하고 실행할 학술전담기구가 없다는 점을 꼽아왔다. 현재 교육부에서 11명이 학술정책을 기획하며, 그중 3명만이 인문사회 정책을 맡고, 그마저도 잦은 인사로 1~3년마다 바뀌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연구재단도 2013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이 됐고, 재단에서 진행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예산 20조원 중 인문사회 분야는 1.5%인 3천억원에 머무는 수준이다. 이런 이유로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연구재단의 사업에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해왔다. 이 때문에 중장기적 학술정책을 전담해서 계획하고 실행하며 그 결과를 평가할 학술전담기구 설립은 인문사회학계의 숙원이었다.

학총 토론회에 발표자로 나온 이강재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대통령 직속 국가학술위원회와 고등학술원 △학술진흥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학술정책연구원 △사회부총리 직속 학술위원회와 학술진흥원 등 네 가지 방안을 검토한 뒤, 가장 마지막 방안을 현실적인 것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새 학술전담기구는 충분한 법적 지위와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기에 사회부총리 산하에 설치하여 교육부 관료의 직접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며 “학술진흥법에 학술진흥원을 추가하는 법 개정으로 비교적 빨리 추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평가했다. 한기형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원장도 “교육부총리 산하기관이 예산과 운영 효율성 확보에 유리할 것”이라며 “학술위원회는 학계전문가와 전문관료의 참여로 상당한 수준의 독립된 의사결정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문사회과학 지원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학총 토론회에 나온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인문사회 분야에 구체적으로 어떤 위기가 있는지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공급 과잉인지 아니면 수요 부족의 문제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런 위기는 인문사회과학 연구가 기술·사회 변화에 따른 도전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덕환 서강대 자연과학부 교수는 “2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는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실상은 정부가 발주한 국민경제 발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용역 사업을 학자들이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연구들은 학문 연구와는 거리가 먼 재능기부 같은 일로 절대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공계 기초학문을 지원하는 것은 전체 연구개발 예산의 2.2%에 그치는 상황이라 인문사회계와 크게 차이가 없다”며 “연구의 자율성을 침해할 정부 지원 말고 민간 기업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인문학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문사회학을 수요와 공급 문제로 봐선 안 된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은 “오히려 인문사회 분야는 시장의 실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 분야에선 투자 대비 효과가 단기간에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윤소영 교육부 학술진흥과장은 “이공계 기초연구 분야에서 겪는 어려움은 인문사회가 겪는 것과 동일하다고 본다. 둘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술’이라는 공동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논의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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