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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여자가 운동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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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운동하는 여자
양민영 지음/호밀밭·1만3800원

숨쉬는 것도 괴로울 정도로 폐가 터질 것 같을 때,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 체육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복싱을 배우던 날의 얘기다. 샌드백을 한참 친 뒤 ‘악마의 운동’ 버피를 120번씩 시키곤 했던 코치에게 씩씩대면서도 끝내 해내던 순간, 그 짜릿함엔 중독성이 있었다. 꾸역꾸역 솟아나오는 승부욕을 구태여 감추지 않아도 됐다. 거울로 내 몸을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대로 움직여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비록 “여자가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을 종종 듣곤 했지만.

스포츠처럼 전통적으로 ‘남성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영역에 여성이 진입하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마구잡이로 다가오는 혐오 발언이나 내 몸을 향해 내리꽂히는 시선쯤은 끄떡 않고 넘길 수 있는 무심함이 필수다. 경기를 즐길 ‘자격’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피로함도 견뎌야 한다. 프로야구에 푹 빠져 있던 시절 나는 “미남 선수가 아니라 야구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란 변명 같은 설명을 매번 구구절절이 해야 했다.

<운동하는 여자>가 반가운 건 그래서다. 저자는 차별과 혐오가 숨쉬는 공간에 시원한 훅을 날린다. 직접 크로스핏과 수영 등을 하며 겪은 변화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뛰어난 여성 운동선수의 역량이 어떻게 가려지는지 보여준다. ‘운동하는 여자’가 사회에서 어떤 이미지로 소비되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페미니즘과 운동이 만나는 지점을 설명한다

책은 말한다. 경쟁하고 싸우는 것, 승부욕과 성취욕을 드러내는 것, 몸의 형태가 아닌 기능에 집중하는 것, 맞서는 힘을 기르는 것, 이 모든 일은 여성에게도 기꺼이 허락된 일임을 잊지 말라고. 비록 “여성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우리의 몸을 긍정하기란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지만 말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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