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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내 글은 내 살과 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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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 자살 전 인터뷰 묶여

가족·학창시설·우정·사랑 등 회고

동료 여성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도

‘그 너머’ 말할 수 없는 무게 느껴져



한겨레

프리모 레비의 말
프리모 레비·조반니 테시오 지음, 이현경 옮김/마음산책·1만6000원

“저는 단테 <신곡>의 ‘지옥’ 편을 좋아했습니다. ‘연옥’은 ‘지옥’만큼 좋아하지 않았고 ‘천국’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프리모 레비가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중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화학자, 그리고 작가. 1987년 1월과 2월 레비는 세 번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조반니 테시오는 문헌학자이자 문학비평가로, 이탈리아 현대 작가들의 작품 선집을 편집했는데 레비와도 그렇게 연이 닿았다. 인터뷰의 목적은 자서전이었다. ‘승인된’ 자서전. 같은 해 4월11일, 레비는 자택의 층계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그의 사후 조반니 테시오는 레비와 진행한 인터뷰를 그대로 책으로 엮었다. 이탈리아어 제목은 ‘여러분에게 말하는 나’. 조부모에서 시작해 부모, 학창생활, 우정, 사랑, 일과 글쓰기 등 테시오의 질문에 레비가 답하는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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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의 말>은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를 비롯한 레비의 작품들과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아우슈비츠에서의 11개월은 이 책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데, 레비가 자세하게 언급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추억이 첫 번째 인터뷰의 주를 이룬다면 청년기의 레비가 두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연극과 영화를 보던 나날, 파시스트와 반파시스트라는 설명으로 구분되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여기 있다. 그는 자신이 “반파시스트도 파시스트도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저는 부르주아였습니다. 부르주아 집안의 부르주아 청소년이었지요.” 그의 아버지는 당시 제일 쉬운 길을 택해 파시스트당에 입당했다. 파시즘을 혐오했지만 그렇다고 반파시스트도 아니었다. 화학에 대한 관심은 별이 뜬 하늘, 동물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같은 반에 있던 엔니오 아르톰을 떠올린다. 행동하는 진짜 반파시스트였던 엔니오는 너무 일찍 반파시스트가 되어 열네 살에 두 번이나 유배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친구가 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뛰어나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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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레비의 일탈은 산이었다. 등산을 함께 하던, 레비보다 뛰어나 주로 이끌어주는 입장이었던 친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정은 모든 것을 조금씩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뢰를 공유하고 산을 공유하고 호기심을 공유하는 겁니다.” 평소의 자신을 내성적이었다고 회고하지만 끈기있는 성격은 등산을 통해 다져진 듯하다. 그리고 다소 시간이 뒤섞이듯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우슈비츠의 시간은 빠지고 글쓰기 방식에 대해 묻고 답한다. 레비는 출퇴근에 필요한 두 시간을 포함해 모두 10시간을 공장에서 일하는 데 쓰고 밤에 글을 썼다. “글은 밤에 썼습니다. 나는 아주 강합니다.” “제가 썼던 글들을 하찮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내 살과 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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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쓴 글은 아우슈비츠에서의 시간에 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항상 상황을 지배하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에게도 포기의 순간들이 있었다. 자주. “번역되어야 할 고백들이 있습니다”라고 레비가 밝히는데, 여기서 ‘번역’이라는 말은 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사이의 심연을 헤아리게 한다. 테시오는 그 심연에 대해 듣고자 한다. 레비의 작품에는 더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 같은 게 존재한다고. 그러면 그 너머로 가고 싶지 않다는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일종의 저항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그 자신도 알고 있다.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갔던 마을에서 머물지 않고 밤에 이동하기로 한 결정 때문에 레비는 체포되었고, 그와 함께 있던 여성은 결국 죽게 되었다. 그 죄책감을 오랫동안 안고 살았다. <이것이 인간인가>를 쓰기 시작하고 아내를 만났다는 점이 레비를 구원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어떤 순간에 사로잡힌다고 고백한다. 더 이상 설명하기를 거부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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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한다. 삶의 영광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일도 삶의 비극을 낱낱이 노출하는 일도 불가능한 한 인간이 자신과 가족의 늙어감, 주변의 세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고통을 고백한다. 말할 수 없음의 무게가, 어렵게 이어지는 답에서 전해진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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