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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안티’ 안데르센, 여행광 안데르센을 추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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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마이클 부스의 유럽 육로 여행기-동화 속 언더그라운드를 찾아서
마이클 부스 지음, 김윤경 옮김/글항아리·1만8500원

“빌어먹을 안데르센과 유치한 동화 같으니라고. (…) 코펜하겐의 쇠락한 산업 항구 앞 가장 음침한 곳의 맞은편 바위 위에 철퍼덕 앉아 있는 인어공주상은 일본인 크루즈 여행객들의 의식 함양에 활용되거나 현지 공공기물 파손자들의 저녁 집회 장소로 쓰였다.”

인어공주상 앞에서의 기념사진을 벼르고 덴마크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자, 다시 마이클 부스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에서 북유럽에 대한 외부자의 환상을 잘근잘근 씹었던 부스의 분노가 덴마크를 상징하는 안데르센에까지 뻗친 건 당연지사. 그런데 아내를 따라 코펜하겐에 정착한 뒤 덴마크어를 배우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숙제로 <인어공주>를 덴마크어 원문으로 읽고 난 뒤 안데르센에게 빠져버렸다. 번역되면서 아동용으로 단순화된 교훈조와 달리 강렬하고 기괴하며 복잡한 안데르센 작품 세계에 탐닉하다가 안데르센의 여행기 <시인의 바자르>를 읽고 나서 결심한다. “그가 본 것을 보고, 갔던 장소를 찾아가며, 그가 묘사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여정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위대한 문화혁신가와 그 어느 누구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조우”하리라! “여행이 곧 삶이다”라는 경구를 남긴 안데르센은 여행광이기도 했다.

그렇게 떠난 함부르크와 뮌헨, 피렌체, 로마, 나폴리,아테네,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등이 이 여행기를 구성하는 도시들이다. 그럼 첫 도착지 함부르크에서 그는 무엇을 봤을까. 유곽에서 일하는 여성을 만나 ‘여기 와서 대화만 하는 남성의 비율은 얼마나 되는가’ 질문을 던졌다. 거의 모든 여행지에서 사창가를 가면서도 “유혹을 뿌리쳤다”고 강조하고, 일기에 자위행위를 기록하며 허구헌날 음경통을 호소한 이 독특한 정신세계의 작가를 이해하는 첫 열쇠는 그의 성적 딜레마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추적기는 아첨을 일삼는 과도한 인정욕구와 허세, 심기증으로 점철됐던 대작가의 궤적을 부스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밤중에 묘지에 들어갔다가 경찰에 쫓기는 등 ‘셜록 홈스’ 놀이를 자처하면서 저자는 점차 안데르센이 여행하던 1840년 유럽 도시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안데르센의 기행 뺨치는 부스의 사건·사고들이 주는 재미는 덤 이상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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