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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37)노트르담 대성당, 집시와 곱추보다 더 위대한 스토리 만들어 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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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노트르담 성당 탑으로 올라가는 벽 어딘가에는 ‘아냐크’(Anaykh)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아나키(Anarchy)란 영어단어를 그리스어 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정부의 부재(不在)로 인한 혼란’, 그리고 ‘운명’이란 의미를 동시에 가졌다.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성당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성당 벽에 새겨져 있던 이 단어를 발견하고 궁금증을 참지 못한다.

"왜 성스러운 이곳에 아냐크란 단어가 적혀있을까? 가혹한 운명, 무슨 의미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작가는 그 단어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얻고, 마침내 이 성당을 배경으로 한 권의 위대한 작품을 창작해 내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1831년에 발표한 역사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de Paris)이다. 영어권에서는 ‘노트르담의 꼽추’라 번역된 바로 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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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에 개봉된 영화 ‘노트르담의 꼽추’ 홍보 포스터. 콰지모도 역에는 앤소니 퀸, 육감적인 에스메랄다 역에는 지나 롤로브리지다./사진= 위키피디아




소설 원작의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어린 여자 아기를 집시들이 훔쳐가고, 그 자리에 괴물 같은 사내 아이를 놓아두면서 두 아이의 운명은 뒤바뀌게 된다는 설정이다.

작가는 ‘아냐크’(Anaykh)라는 단어를 이렇게 풀어낸 것이다. 요즘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의 뿌리라고나 할까?

콰지모도는 추한 외모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괴물로 취급 받으며 자란 불행한 남자다. 활처럼 등뼈가 휘고 가슴뼈는 앞으로 툭 불거진 매우 심각한 곱사등이다. 게다가 두 다리는 절름발이, 여기에 큰 사마귀가 나있어 한쪽은 애꾸눈다. 어릴 때부터 성당 안에서 종지기로 살아온 탓에 귀까지 멀었다.

반면에 집시 족 틈에서 성장한 에스메랄다는 눈부신 외모와 관능미 물씬 풍기는 매력적인 여인이 되어 뭇 남성들의 가슴을 흥분시킨다. 콰지모도와 달리 그녀의 인생은 노트르담 바깥에서 진행되어 먹고 마시고 춤춘다. 두 사람의 삶을 구분하는 경계가 노트르담이며, 첫 인연이 이어지는 곳 역시 노트르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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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가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에게 물을 건네는 장면을 그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브리옹의 일러스트레이션./사진=위키피디아




소설 속에는 강한 캐릭터들이 여러 명 등장한다. 겉으로는 성스럽고 금욕의 상징과도 같지만 실제로는 욕정에 눈이 멀어 살인을 하고 에스메랄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성당의 부주교 클로드 프롤로, 에스메랄다가 좋아하던 경비대장이며 바람둥이인 페뷔스 드 샤토페르가 대표적이다.

에스메랄다는 그 관능적인 매력 때문에 많은 남자들을 파멸로 이끌고 본인 스스로도 불행하게 인생을 막 내리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상징처럼 그려진다. 치명적인 여성인 것이다.

19세기에도 파리와 노트르담 성당 앞에는 집시들이 많았던 것 같다. 비록 현실 속에서는 귀찮은 존재이지만,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곳의 집시 여인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바꿔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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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성당 앞은 소매치기와 집시들이 많아서 정기적으로 기마경찰이 순찰한다./사진=손관승



빅토르 위고는 표면적으로는 꼽추 콰지모도와 집시여인 에스메랄다의 이뤄지지 않는 사랑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루이 11세 치하의 15세기 파리의 사회상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핵심 공간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한 시테 섬이다. 노트르담 성당의 건축물과 실내 디자인, 그리고 뒷골목 모습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노트르담의 꼽추’라 불리던 추한 남자가 훗날 성당 지하실의 좋아하던 여인의 해골 옆에 누워 죽음으로써 사랑하는 여인과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결말은 독자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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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15일 화재가 발생하기 이전의 노트르담 대성당. 센 강의 한복판 시테 섬 가운데 서있다./사진=손관승



세계인들을 슬픔과 경악에 빠뜨리게 한 화재사건이 발생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은 방문자 수는 하루 평균 3만 명에 가깝다고 한다. 연간 1천4백만 명에 이르는 엄청난 숫자다. 성당 입구에는 입장을 기다리기 위해 항상 긴 줄이 늘어서있었다.

덩달아 이들의 주머니와 가방을 노리는 소매치기들이 주변을 얼씬거리고, 특이한 용모의 여인들도 자주 눈에 뜨였다. 이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는 집시 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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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 섬 양 옆으로 센 강이 흐른다. 가운데 높이 솟아있는 것은 4월15일 화재로 소실된 노트르담 성당의 첨탑./사진=손관승



850년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위치한 시테 섬은 양쪽으로 센 강이 평화롭게 흐르는, 파리의 옛 도심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에 속한다. 파리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나폴레옹의 대관식과 드골, 미테랑 등 전 대통령의 장례식 같은 중세부터 근대, 현대까지 프랑스 역사를 지켜본 장소다. 고딕 건축의 백미라 평가되는 외경과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보석 같은 예술작품 등으로 성당 중의 성당으로 손꼽히던 곳이었다. 그런 연유로 단순히 파리 시민들뿐 아니라 인류공동으로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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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기독교를 전파한 생 드니의 순교를 기리기 위한 조각이 노트르담 성당 외벽에 새겨져있다./사진=손관승



[미니정보] 노트르담 성당

하지만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긴 줄을 기다리며 입장하게 만든 데는 빅터르 위고가 만들어낸 스토리텔링과 캐릭터의 힘이 컸다.

에스메랄다가 바람둥이 남자 페뷔스와 사랑을 나누려고 할 때 그곳에 몰래 잠입한 부주교가 질투심을 못 이겨 단도로 남자를 찔러 사망하게 만들고 그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는 상황과 교수형 집행 직전 콰지모도가 종탑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그녀를 구출한 뒤 성당 안으로 도망친다는 설정은 독자나 관객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매력적인, 너무나 매력적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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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많은 방문객으로 붐볐던 노트르담 성당의 내부 모습. 이번 화재로 많은 것들이 불에 타버렸다./사진=손관승



비록 소설 속에서 콰지모도는 세상에서 가장 추한 모습을 가졌지만, 이제 그는 가장 사랑 받는 캐릭터가 되었다. 1905년 무성영화로 만들어 진 것을 시작으로 1923년에는 론 채니 주연의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제목으로 할리우드에서 상연되었다.

그 이후 영화, 뮤지컬, 연극,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로 끊임없이 리메이크되고 있다. 앤서니 퀸과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각각 남녀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는 크게 인기를 끌었으며, 앱서니 홉킨스와 데릭 재커비가 출연한 1982년도의 텔레비전 영화도 화제가 되었다.

당연히 월트 디즈니에서도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으며, 뮤지컬 ‘파리의 노트르담’은 ‘레미제라블’과 함께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뮤지컬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한편 2010년 영국의 한 학자는 콰지모도가 빅토르 위고가 소설 쓰던 무렵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석공으로 활동했던 실제의 꼽추 인물이었다는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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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에 휩싸인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노트르담은 프랑스어로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의미이며, 성모마리아를 가리킨다. 그 말처럼 우아하고 아름답던 노트르담 성당은 앞으로 오랜 기간 콰지모도처럼 흉물스런 외모를 유지해야 할 것 같다.

콰지모도는 비록 외모는 흉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선해, 그를 수호하는 성모 마리아의 또 다른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노트르담은 화재 이후에도 세상의 상처를 두루 만져주는 곳으로 거듭날 것이다. 다행히 콰지모도가 세상을 향해 종을 울리던 종탑은 불에 타지 않았다. 콰지모도 정신은 아직 살아있다. 화재를 겪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전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으로 재탄생하는 위대한 스토리를 새로 쓸 수 있길 기대한다.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ceonoma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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