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7 (월)

[시가 있는 월요일] 많이 밟힐수록 좋은 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땅의 살이 굳어지면

길이 된다

많이 밟힐수록

좋은 길이 된다

어머닌 굳은 손으로

뜨거운 냄비를 덥석 집어 올리나

난 아직 뜨거운 밥그릇 하나 들지 못한다

굳는다는 건

수많은 길들이 내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것

책상 위 모과가 굳어가면서

향기가 더 진해지고 있다

-안명옥 作 <모과>

그렇다. 많이 밟힐수록 좋은 길이 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발자국을 감당해낸 땅이 결국 좋은 길이 된다. 아픔이 결국 길이 되는 것처럼.

성난 파도가 능숙한 뱃사공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의 야들야들한 손은 뜨거운 밥그릇 하나 들지 못하지만 어머니의 굳은 손은 뜨거운 냄비를 든다. 얼마나 많은 밥그릇과 냄비가 어머니의 손을 거쳐갔을까. 그 뜨거움들이 어머니의 손을 경지에 이르게 한 것이다.

책상 위에서 굳어가는 모과를 보며, 시간이 지날수록 향기가 더 진해지는 모과를 보면서 생각해낸 시인의 아포리즘이 매력적이다.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