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3 (수)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메이의 협상안은 죽었다” 브렉시트 또 부결…英 정국 혼돈으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테리사 메이의 브렉시트 합의안은 이미 죽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또다시 영국 하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영국 정부와 유럽연합(EU)은 표결 전야 브렉시트의 주요 쟁점이었던 ‘안전장치(백스톱)’에 대해 가까스로 재합의를 이뤘지만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역부족이었다.

12일(현지 시각) 열린 2차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투표는 영국 하원 의원 633명 중 찬성 242표, 반대 391표로 부결됐다. 영국 의정 사상 네 번째로 큰 표차(149표)로 의회에서 패배한 것이다. 앞서 영국 하원은 지난 1월 진행한 1차 표결에서 의정 사상 최다 표차(230표)로 합의안을 부결시켰었다.

조선일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2019년 3월 12일 영국 하원의 브렉시트 합의안 2차 표결이 부결된 후 연설하고 있다. /가디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의 정국 혼란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워질 전망이다. 메이 총리는 부결 직후 "매우, 심히 유감스럽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미 영국 의회에서는 메이 총리의 사임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브렉시트 합의안 2차 투표 부결…또 ‘백스톱’에 발목

이날 투표에서 집권 여당인 보수당 235명, 제1야당인 노동당 3명, 무소속 4명 등이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표를 낸 의원은 노동당 238명, 보수당 75명, 스코틀랜드국민당(SNP) 35명 등으로 나타났다. 반대한 의원 중 보수당 강경파 75명이 찬성표를 냈다면 합의안은 통과될 수도 있었다.

하원 투표를 코앞에 둔 전날 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백스톱을 무기한 연장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다.

백스톱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의 ‘하드 보더(Hard Border·국경 통과 시 통행과 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브렉시트 이행 후에도 당분간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에 남기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영국 의회에서는 백스톱 종료 시점이 불분명하다는 반발이 나왔고, 이는 지난 1차 투표에서 합의안이 부결된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조선일보

영국 하원이 2019년 3월 12일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해 2차 표결을 하고 있다. /BBC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에 메이 총리는 11일 융커 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EU가 백스톱을 영구적으로 유지하려 할 수 없다는 내용의 조항을 합의했다. EU가 백스톱을 무기한으로 두려고 할 경우 영국이 일방적으로 이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메이 총리와 융커 위원장은 이 합의안에 대한 영국 의회의 승인을 촉구했다.

그러나 결국 이날 영국 하원은 합의안을 부결시켰다. 백스톱 조항이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이날 투표에 앞서 제프리 콕스 영국 법무상은 전날 합의된 백스톱 수정 조항에 관해 법률적으로 분석한 결과, 이 조항이 EU의 무기한 백스톱을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예상치 못한 결과는 아니었다. 앞서 노동당 당수인 제러미 코빈 대표는 전날 성명을 내고 수정 합의안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며 투표 부결을 독려했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도 합의안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 "메이의 합의안은 죽었다"…英 정국 혼란, 조기총선 요구도

이번 결과로 메이 총리는 정치적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영국 BBC는 "메이 총리가 궁지에 몰렸다"며 "이번 패배는 메이 총리의 당 지도력을 더 약화시키고 의원들의 사임 요구에 힘을 실을 수 있다"고 했다. 가디언도 "영국 정부가 주요 정책에 대해 두 번이나 하원에 패배한 건 전례가 없다"며 "메이 총리의 퇴출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영국 정계에서는 메이 총리의 책임을 묻는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코빈 노동당 대표는 이날 표결 이후 조기총선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메이 정부는 또다시 엄청난 표차로 패배했고, 지금의 브렉시트 합의안은 명백히 죽은 것이 됐다"며 "메이 총리는 의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메이 총리의 불신임 투표는 치러질 수 없다. 이미 지난 1월 16일 진행된 불신임 투표가 부결됐기 때문이다. 영국은 정부 불신임 투표가 부결될 경우 이후 1년 간 불신임 투표를 다시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코빈 대표는 ‘노딜 브렉시트’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노동당은 대체 방안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2차 국민투표에 대해 거론하지는 않았다.

마크 드레이크포드 웨일스 제1장관(자치정부 수반)은 "테리사 메이의 브렉시트 협상은 끝났다"며 메이 총리가 협상 테이블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레이크포드 장관은 "두 달 전 역사적인 패배 이후 메이 총리는 야당과 자치정부의 요구에 귀 기울이겠다고 했지만, 그는 이를 미루고 부정하는 무모한 전술로 일관했다"며 "메이 총리의 협상은 물거품이 됐다"고 했다. 그는 노딜 브렉시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브렉시트 이행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브렉시트 문제가 복잡한 사안인 만큼 메이 총리를 대신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디언은 "지금 시점에서 하원 의원 중 메이 총리의 고된 일을 당장 떠맡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아직까지 메이 총리 본인도 사임 의사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 ‘노딜’ vs ‘연기’…추가 협상 가능성 낮아

앞으로 브렉시트 시나리오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3월 29일 브렉시트 이행 날짜까지는 약 2주 밖에 남지 않았다. 합의안이 부결된 상황에서 남은 선택지는 ‘노딜’ 또는 ‘연기’다.

조선일보

메이 총리는 이날 표결 직후 예고 대로 13일 노딜 브렉시트 여부를 결정하는 하원 표결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딜 브렉시트가 가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만약 가결되면 오는 29일부터 노딜 브렉시트가 이행된다. 영국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에서 노딜 브렉시트의 정치·경제적 충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3일 노딜 브렉시트 투표가 부결되면 영국 의회는 14일 브렉시트 이행 날짜를 연기하는 표결을 하게 된다. 앞서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연기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융커 위원장은 전날 회담 이후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오는 5월 23~26일 열리는 유럽의회 선거 전 영국의 EU 탈퇴가 완료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메이 총리는 여전히 지금의 합의안이 최선이며, 유일한 타협안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EU와의 추가 협상을 추진할 계획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EU도 더 이상 추가 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융커 위원장은 전날 회담 후 "세 번째 협상은 없다. 이번이 영국에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이선목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