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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아무튼, 주말] 봄을 진하게 마중하는 여행… 매화·미나리·고로쇠 찾아 원동行 남행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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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원동면 삼색 봄 나들이

낙동강 변 매화 군락의 절경

기찻길도 있어 사진찍기 좋아… 나무 아래부터 꽃 피고 지므로 가까이서 보려면 좀 일찍 가야

미나리 삼겹살의 성지

친환경 농법으로 키운 미나리 삼겹살에 곁들여 봄내음 만끽

3월 한정판 고로쇠 수액

지리산보다 20여일 일찍 채취 밍밍하기보다 단맛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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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 원동에서 가장 먼저 매화 축제를 시작한 ‘순매원’. 경부선 기찻길과 낙동강, 매화 군락이 절경을 이룬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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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봄의 경계는 매화(梅花)'라는 말이 있다. 매화보다 앞서 노란 꽃을 피우는 복수초도 있지만, 매화를 시작으로 봄꽃들이 축제를 벌이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래서 매화를 만나러 갔다. 겨울을 벗고 봄으로 갈아입는 의식과 같다.

예년에는 섬진강 매화를 만나러 전남 광양으로 향했지만 올해는 발길을 틀었다. 행선지는 경남 양산 원동면. 낙동강변을 물들인 매화에 향긋한 미나리 삼겹살, 고로쇠까지 오직 3월에만 맛볼 수 있는 '한정판 봄맛'이 이곳에 있었다.

낙동강 따라 매화 축제

"개화 시기를 내가 우째 압니꺼? 꽃들 마음이지예. 그래도 올해는 이래~ 보면, 이짝 마을(원동면 원리 일대) 매화는 5일부터 17일 사이에 꽃이 제일 좋지 않을까 싶습니더."

원동면 매실 농원 순매원의 김용구(70) 대표가 빙그레 웃으며 개화 시기를 넘겨짚었다. 꽃의 개화는 그저 자연의 순리와 통계에 따른 예측일 뿐, 김 대표 말처럼 그 시기는 '꽃들 마음'이다. 그래도 예년보다 빨라진 개화 소식에 잔뜩 기대하며 찾아간 원동면의 매화들은 꽃망울을 감질나게 터뜨리고 있었다.

전남 광양의 섬진강 매화축제만큼 크고 떠들썩하진 않지만 원동면 역시 매화 필 무렵이면 마을 단위로 축제를 연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건 원동면 원리 '관사마을'의 순매원이다. 관사마을은 옛날 경부선 원동역 관사 터가 있던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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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동면 ‘전망대매화관광농원’의 잔치국수, 묵무침, 파전. 미나리 철엔 손수 재배한 미나리를 넣어준다. 2 원동면 ‘전망대매화관광농원’의 전망대에 서면 낙동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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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매원이 원동 매화축제의 대표 명소가 된 이유는 순매원 전망대에 오르면 알 수 있다. 토곡산 자락 끄트머리를 휘돌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그 강을 따라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경부선 기찻길, 기찻길과 어깨를 나란히 한 매화나무 군락이 빚어낸 절경은 오직 매년 춘삼월 이곳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 매화 개화 시기에 맞춰 사진 동호인들이 몰린다.

2월 28일 현재 순매원의 매화 개화 상황은 60% 정도다. 볕이 잘 드는 쪽의 홍매화는 활짝 피었으나 청매화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듯 꽃망울을 앙다물고 있었다. 만개한 매화를 감상하려면 3월 둘째·셋째주를 추천한다. 매화나무 아래 가까이에서 활짝 핀 꽃을 보려면 좀 더 서둘러야 한다. 김 대표는 "땅에 가까운 매화부터 개화하기 때문에 나무 위쪽이 만개했을 땐 이미 아래쪽 매화들은 시들해진다"고 설명했다.

원동역에서 걸어서 10~20분 거리에 있는 순매원은 80여 년 역사를 자랑한다. 3만3000㎡(1만여 평) 농원에 매화나무 800주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관사가 있던 시절 심은 것으로 추측되는 100년 수령의 매화나무도 세 그루 남아 있다. 20여 년 전부터 농원을 인수해 가꿔온 김 대표는 "이곳은 우리나라 매실 시배지(始培地)로 알려져 있다"며 "원동 매실은 토종이라 개량종에 비해 작지만 맛과 향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혼자 보기 아까워 농원을 개방하면서 열기 시작한 '순매원 매화 잔치'는 올해로 15회째를 맞는다. 김 대표는 "처음엔 이곳을 알리기 위해 10년간 무료로 식사를 제공했다"며 "지금은 농원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 매화 잔치 축제 기간에만 한시적으로 개방한다"고 했다.

일 년에 딱 한 달만 허락되는 비밀의 농원에 들어서면 아찔한 매향이 코를 찌른다. 이렇다 할 즐길 거리는 없지만, 곳곳에 평상이나 의자를 놓아 낙동강을 바라보며 봄바람 맞기 좋다. 물레방아 옆 좁다란 둘레길 안쪽에 놓인 평상은 순매원 안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 축제 기간에만 판매하는 잔치국수와 매실장에 찍어 먹는 파전 등은 시장기를 달래기 좋다. 관람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 50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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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한 식감을 자랑하는 원동 미나리.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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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매화축제는 순매원 외에도 원동면 대여섯 마을에서 열린다. 올해 13회를 맞는 양산 원동매화축제는 3월 16~17일 영포 매화마을 주말 장터 특설 무대(원동면 원리 857-18)와 쌍포매실다목적광장(원동면 영포리 537) 일대에서 연다. 영포 마을은 산자락과 둑길을 하얗게 수놓은 매화 군락을 감상하기에 좋다. 단, 원동매화축제는 경상권 첫 봄꽃 축제인 만큼 매우 혼잡하다. 축제 기간을 피해 조금 서둘러 다녀가거나 축제 기간에 원동역에서 행사장까지 운행하는 셔틀 버스를 이용하는 게 상책이다.

미나리와 삼겹살의 찰떡궁합

미나리는 봄의 상징과도 같은 잎채소다. 한입 베어 물면 아삭한 식감에 기분이 좋아지고 씁쓸하면서도 상큼한 향내를 풍긴다. 봄에 원동면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미나리다. 원동면 함포를 비롯해 내포, 영포 마을은 미나리 농가가 밀집된 지역으로 수확이 시작되는 이른 봄부터 싱싱한 미나리를 맛보려는 발길이 이어진다. 일대 미나리 재배 비닐하우스가 100여 동 모여 있다.

이곳 미나리 농가들은 2013년 4대 강 정비 사업 당시 낙동강변 경작지에서 옮겨와 형성됐다. 원동 미나리 작목반장인 김창민(64) 예경농원 대표는 "2013년 첫해 미나리 재배가 성공을 거두면서 차츰 내포와 영포 마을까지 미나리 재배 농가가 늘어났다"며 "지금은 매년 봄마다 '미나리 삼겹살의 성지'가 됐다더라"고 넌지시 자랑했다.

함포에 있는 농가들은 친환경 농법으로 미나리를 재배하고 있다. 5~7일간 배양한 클로렐라를 500~1000배 희석해 미나리에 뿌려 생육을 촉진하고 병해를 막고 있단다. 친환경 재배 미나리로 소문이 나면서 3월마다 원동청정미나리축제를 연다. 함포마을회관(원동면 원리 414-8) 앞에서 미나리 시식 판매 행사를 하고 딸기, 매실 진액, 잎새버섯 등 원동 특산물 판매장이 운영된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미나리 삼겹살. 3월 한 달간 미나리 재배 비닐하우스마다 '미나리 삼겹살 식당'을 임시 운영한다. 1번, 2번, 3번… 번호가 적힌 미나리 재배 비닐하우스에선 미나리와 함께 삼겹살을 판다. 미나리 농가에서 재배한 미나리 1단을 사는 게 '옵션'이다. 갓 수확한 미나리는 비닐하우스 한쪽에서 흐르는 물에 씻어 접시에 담아준다. 반찬은 미나리뿐. 쌈장, 김치, 햇반 등은 따로 구입해야 한다. 삼겹살을 사먹지 않고 직접 사오거나 싸온 음식을 먹을 경우 미나리 1단 구입 후 자리 대여료를 내면 된다. 친구와 함께 대구에서 왔다는 김미정(38)씨는 "봄 하면 미나리 삼겹살이 떠오른다. 이른 봄 소풍 오는 기분으로 밥과 반찬, 쌈을 준비해 와 먹으니 더 맛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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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 미나리 재배 농가마다 3월엔 미나리 시식을 위한 ‘미나리 삼겹살 식당’을 임시 운영한다. 예경농원에서 미나리 삼겹살을 맛보는 관광객(왼쪽)과 미나리를 올린 삼겹살.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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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줄기는 가위로 잘라 쌈장에 찍어서, 잎은 삼겹살 구울 때 수북하게 얹어 곁들여 먹는다. 삼겹살의 기름진 맛을 미나리가 잡아줘 폭식하기 쉽다. 김창민 대표는 "미나리 농가마다 축제 기간엔 하루 100~200단의 미나리를 한정 판매하는데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부득이 미나리를 1인당 1~2단만 구매하도록 제한하기도 한다"고 했다. 농가에서 운영하는 미나리 삼겹살 임시 식당들은 3월 한 달간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한다.

미나리 농가 외에도 원동면엔 미나리 삼겹살을 판매하는 식당이 여럿 있다. 축제 기간이 아니어도 미나리 삼겹살과 미나리를 넣은 요리들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원동면 서룡리 전망대매화관광농원에선 미나리 삼겹살은 기본, 미나리 철엔 잔치국수와 파전, 묵무침 등 메뉴에 직접 재배한 미나리를 듬뿍 넣어준다. 매실 농원을 함께 운영해 매실 장아찌 등 손수 만든 반찬들을 상에 올린다. 지역 맛집으로 소문나 단체 관광객은 물론 현지 주민들도 즐겨 찾는다. 탁 트인 낙동강을 볼 수 있는 야외석이 인기. 일정 인원이 식사하면 같은 건물에 있는 펜션 숙박을 무료 제공하기도 한다. 빼어난 시설은 아니나 '낙동강 뷰'는 일품이다.

배내골 고로쇠도 '3월 한정판'

바로 채취한 고로쇠 수액을 맛보기엔 3월이 적기다. '영남 알프스의 심장부'라 불리는 원동면 배내골 고로쇠도 지나치기엔 섭섭하다. 60여 농가가 매년 경칩 전후인 2월~3월 초 20만여 L의 고로쇠 수액을 채취해 판매한다. 지리산 뱀사골 고로쇠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곳보다 20여 일 일찍 나오는 배내골 고로쇠 수액을 맛보러 서둘러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2월 중순부터 원동면 선리 배내골 홍보관을 중심으로 왕복 2차로 길가엔 배내골 고로쇠 수액을 비롯해 배내골 특산품인 사과 등을 파는 노점상이 띄엄띄엄 자리를 잡는다. 가격은 1.5L 1병에 5000원. 배내골 고로쇠 수액은 배내골에서도 깊은 골짜기로 꼽히는 통도골 계곡 주변에서 채취한다. 영화 '달마야 놀자'의 촬영지로 알려진 곳이다. 김상규(50) 배내골고로쇠 작목회장은 "배내골은 원동면의 선리와 대리를 아우르는 청정 지역으로 배내골 고로쇠 수액은 밍밍하지 않고 단맛이 나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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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4회를 맞는 양산 배내골 고로쇠 축제는 이달 2~3일 이틀간 배내골 홍보관 일대에서 열린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고로쇠 수액 시음회, 수액 빨리 마시기 대회, 풍물공연 등을 즐길 수 있다. 김 작목회장은 "매년 축제 기간인 이틀 동안 채취한 모든 고로쇠 수액이 '완판'됐다"고 했다.

배내골 홍보관 인근엔 3월에 고로쇠 수액을 물 대신 무료 제공하거나 고로쇠 수액을 활용해 음식을 만드는 맛집들이 있다. 원동면 대리 대추나무집은 고즈넉한 한옥에서 메뉴판에도 없는 고로쇠 백숙을 맛볼 수 있다. 주인은 "고로쇠 백숙은 일반 백숙보다 국물이 달아서 원하는 경우에만 만들어 준다"고 했다. 20년 넘은 맛집으로 특히 축제 기간엔 예약 필수다.

[양산=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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