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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만물상] '필리핀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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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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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식모’란 직업이 등장한 것은 일제 강점기에 건너온 일본 가정이 조선 여성을 고용하면서부터였다. 1938년 일제가 조사한 식민지 조선의 여성 구직자는 2만7000명이었는데 이 중 식모 취직자가 2만5000명으로 90%에 육박했을 만큼 대표적인 여성 직업이었다. 적으나마 월급도 받았다. 하지만 해방 후 6·25로 전쟁 고아가 쏟아져 나오며 ‘입에 풀칠만 시켜주면 월급은 안 줘도 되는’ 직업으로 전락했다. 급여가 한 달 담뱃값 수준도 안 돼 1960년대 서울 가정의 52%가 식모를 뒀을 정도다.

▶식모와 함께 여공과 버스 안내양은 가난했던 1960년대 여성이 택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직업이었다. 그분들이 번 돈으로 가족이 생계를 꾸렸고 형제자매가 공부했다. 일부는 독일에 간호사로 나갔다. 그처럼 억척스러운 여성 중엔 식모살이하면서도 주경야독으로 미래를 개척해 대학 총장이 되고 자기 개발에 나서 화가로 성공한 이도 있다.

▶오늘날 필리핀 여성이 반세기 전 한국 여성과 비슷한 처지다. 1960년대만 해도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살고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두 배였던 나라가 지난 반세기 추락을 거듭해 전 세계에 저임금 노동자를 200만명 넘게 내보내는 처지가 됐다. 필리핀 여성 해외 취업은 주로 가사 도우미라고 한다. 유럽·중동·일본·싱가포르·홍콩 등에 진출해 있다. 홍콩에선 최저임금만 받아도 필리핀 의사 수준이다. 고생스러워도 외국 식모살이를 각오하는 이유다.

▶필리핀 가사·육아 도우미가 오는 9월쯤 한국 땅을 밟는다. 맞벌이 증가와 고령화로 인해 늘어나는 돌봄 도우미 수요를 국내 공급으론 감당이 안 돼 받아들이기로 했다. 벌써부터 ‘필리핀 이모’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왕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한국과 필리핀 두 나라에 이익이 되었으면 한다. 일부 중동 국가들이 필리핀 가사 도우미를 학대하거나 성폭행해 국제적 비난을 샀다. 우리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가 그들 처지였다.

▶1960년대 저임 노동에 시달리던 식모와 버스 안내양, 여공을 얕잡아 부르던 말이 ‘삼순이’였다. 삼순이의 삶을 다룬 어느 책에서 10대 소녀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번 돈을 아껴 동생들에게 빵을 사주며 “이 순간처럼 땀 흘린 보람을 느껴본 적이 없다. 피곤도 굴욕도 내 것이 아니다”라고 썼다. 내 어머니 또래였을 이 소녀의 희생을 빼고 오늘의 풍요를 설명할 수 없다. 이 땅에 오는 필리핀 여성들의 노고도 훗날 보상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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