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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일사일언] 어느 재일교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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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


교보문고 옆 시전행랑 터에서 내려다본다. 유리판 아래 주추와 구들이 발굴된 채로 있다. 박찬호(朴燦鎬·1943~)의 나고야 서재도 꼭 이러했다. 위층에서 정리된 자료를 열람하며 유리판 아래 전쟁터나 다름없는 서재를 내려다봐야 한다.

선생의 서재는 일본 나고야의 야키니쿠(불고기) 식당 장수원(長水苑)에 있다. 선친의 고향이 전북 장수라 장수원인데, 마당 앞 행랑채가 서재다. 20년 전 문을 밀었더니, 책꽂이엔 신문 스크랩이 가득했고 선반에는 유성기판이 빼곡했다. 책은 구석에서 쏟아졌고 공중엔 육필 메모가 투항을 권고하는 삐라처럼 흩날렸다. 발 디딜 틈이 없으니 전쟁 고혼처럼 적당히 날아다녀야 했다. 이 극한의 전쟁터에서 그는 '한국가요사'를 완성했다.

그날 고기 굽고 잔을 비웠다. 합석한 동포가 "야키니쿠(燒肉)는 일본에선 한국식, 한국에선 일본식, 어디에도 못 끼는 우리들 처지"라고 했다. 선생은 '귀국선'을 불렀다. "몇 번을 불렀던가, 고향 노래를…." 누선을 빠져나가지 못한 슬픔이 희게 번져 마블링된 목소리였다. 일본에서는 '조센진'이었고, 모국에서는 '반쪽발이'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고향 노래에 빠졌고 늦은 나이에 한글을 깨쳤다. 일본에 흩어진 음반과 자료를 찾아 천리를 돌았다. 밤에는 고기를 굽고 자정이 넘으면 행랑아범처럼 서재에 박혀 글을 썼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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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장수군에서 선생의 자료를 들여왔다. '박찬호 기념관'을 만들 거라고 했다. 시전행랑 터에서 유리천장으로 막은 2층의 기념관을 생각했다. 아울러 '장수원'도 입주해야 한다. 유명한 장수 한우를 장수원 방식으로 굽는 거다. 이것은 불고기인가, 야키니쿠인가. 지금까지 없었던 맛으로 인파를 이끌어야 한다. 국경 밖에서 고기를 구우며 쓴 '한국가요사 1·2'. 민족사를 1412쪽으로 요약했다. 이를 회자되게 하는 것이 기념관의 임무인 때문이다.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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