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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당신이 마신 와인 한 잔, 무엇이 들었는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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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 르주롱]

약품 없이 전통 방식으로 발효한 '내추럴 와인'으로 전세계에 열풍

"당신이 즐겨 마시는 와인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지 않나요. 혹시 살충제와 화학물질이 묻은 포도로 만든 것은 아닌지, 아황산염을 비롯한 방부제와 독성 물질이 잔뜩 녹아 있는 건 아닌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조선일보

지난 13일 서울에서 만난 이자벨 르주롱은 짧은 머리칼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내추럴 와인을 마시면서 나의 삶도 달라졌다. 면이나 울같은 자연 소재 옷만 입고 모피는 걸치지 않는다. 고기를 먹을 때도 자연 방목으로 길러낸 것인지 아닌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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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적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는 차분했다. 전 세계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 '내추럴 와인'의 저자 이자벨 르주롱(47)이다. 내추럴 와인 행사 '살롱 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그는 13일 본지와 만나 "대량 생산·유통되는 와인 때문에 우리도 아픈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불고 있는 내추럴 와인 열풍의 8할은 르주롱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 넘게 그는 전 세계를 돌며 왜 내추럴 와인을 만들고 마셔야 하는지 강연해왔다. 본래 그는 프랑스 동북부 코냑 지방에서 7대째 와인 양조장을 운영하는 집안의 딸이다. 20대에 영국 런던으로 건너와 체계적으로 와인을 공부했고, 2009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와인 전문가 인증이라는 '마스터 오브 와인(MW)'을 땄다. 프랑스 여성이 MW 인증을 딴 건 르주롱이 처음이다.

전형적인 와인 메이커의 길을 걸을 것 같았지만, 평생 와인 농장을 경영했던 아버지와 삼촌이 폐암과 파킨슨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직후엔 그의 삶도 달라졌다. 두 사람 모두 평생 담배 한 대 피워본 적 없었다. 의사는 "제초제 같은 독성물질에 오래 노출된 탓 같다"고 했다. 르주롱은 "이때 상당수의 와인이 대량 생산과 안정적인 유통을 위해 화학물질을 첨가한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와인이 자연도 인간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고 했다.

헝가리 와인 양조장을 돌다가 만난 내추럴 와인이 그의 눈을 새롭게 뜨게 했다. 300여 잔을 한꺼번에 시음한 자리에서 2잔이 유독 맛있었다. 알고 보니 같은 사람이 만든 와인이었다. 이 와인 양조업자는 전통 재래 방식으로 내추럴 와인을 만들고 있었다. 포도를 일일이 손으로 따고 즙을 내 약품 없이 발효시켜 만든 술이었다. 르주롱은 "이게 곧 우리가 택해야 하는 와인 제조법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르주롱의 주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다. 기존 와인업계 종사자들은 "르주롱이 너무 극단적이고, 내추럴 와인 제조법이 아직 완벽히 검증된 것도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르주롱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술을 만들어 온 방식이 내추럴 와인 농법이다. 화학 제초제나 살충제를 쓰는 지금의 와인 제조법이야말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짧은 시기 동안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유명 와인 생산자인 베르나르 노블레가 말했죠. '와인은 단순하다. 인생도 단순하다. 이걸 복잡하게 만드는 게 인간이다.' 저도 동의합니다. 와인 한 잔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투명하게만 밝혀줘도 좋겠어요. 지금 마시는 그 음료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젠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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