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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His 스토리] 스타벅스 제국 일군 하워드 슐츠…트럼프 킬러인가, 민주당 킬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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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슐츠 전(前) 스타벅스 회장이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평생 민주당원이라고 자처했던 그의 돌발 선언에 워싱턴 정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워드 슐츠 회장은 시애틀의 조그만 가게였던 스타벅스를 30년만에 전세계 77개국에 2만8000개 점포를 둔 ‘커피 제국’으로 키운 입지전적인 기업가다.

하워드 슐츠 전 스타벅스 회장은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미국 CBS 방송의 시사프로그램인 ‘60분’에 출연해 "대선 출마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양당(공화당·민주당) 체제에서 벗어나 중도 무소속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슐츠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고, 양당은 미국인에게 필요한 일 대신 보복 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지금은 (정치적으로) 취약한 시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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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슐츠 전 스타벅스 회장이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로이터


슐츠는 무소속 출마 이유에 대해 지난 29일 NPR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하면 경선 승리를 위해 거짓말과 거짓행동을 해야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슐츠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언론 담당 비서관을 맡았던 빌 버튼을 영입하고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섰다. 자신의 저서인 ‘바닥에서 일어나 : 미국의 약속을 다시 상상하기 위한 여행’을 홍보하는 전국 투어도 지난 28일부터 시작했다.

민주당은 슐츠의 무소속 출마 선언에 거세게 반발했다. ‘트럼프 심판론’에 응집해야 할 민주당 지지층과 중도층의 표심이 분산되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어부지리를 취하게 된다는 계산에서다. 그의 출판기념회에서 한 민주당 지지자가 "트럼프 재선을 돕지마라, 이기적인 억만장자야"라고 소리지르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 트럭 운전수의 아들, 커피 제국을 일구다

하워드 슐츠는 1953년 뉴욕 브루클린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트럭 운전수로 일하던 아버지가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로 실직한 뒤로는 경제적으로 더 궁핍해졌다. 슐츠는 "나는 자라면서 항상 부유하고 행복한 사람들과는 동떨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미식축구 장학금을 타내는데 성공한 슐츠는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 문턱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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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하워드 슐츠 /howardschultz.com


슐츠는 대학 졸업 후 제록스 사를 거쳐 스웨덴 커피메이커 제조회사인 햄프라스트에서 일했다. 슐츠는 햄프라스트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1979년 총괄매니저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1982년 갑자기 시애틀의 작은 커피 전문점이었던 스타벅스로 이직했다. 고객사로 만난 스타벅스의 해박한 커피 지식에 반해서였다.

슐츠는 스타벅스를 단순한 커피 전문점이 아니라 ‘만남의 광장(social hub)’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품었다. 경영진이 그의 의견에 반대하자 슐츠는 입사 3년 만에 퇴사를 택했다. 슐츠는 자신의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 1985년 ‘일 지오네일’이라는 카페를 직접 차렸다.

슐츠는 카페의 개념을 ‘들르는 곳’에서 ‘머무르는 곳’으로 바꿨다. 일 지오네일에서는 항상 오페라 음악이 흘러나왔고 벽에는 근사한 이탈리아 그림이 걸려있었다. 손님들은 커피 한잔만 사면 편한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일 지오네일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슐츠가 떠난 스타벅스는 쇠락했다. 1987년 슐츠는 스타벅스를 380만달러(약 43억원)에 인수하고 일 지오네일과 통합했다.

슐츠는 미국 전역에 스타벅스 매장을 내겠다는 목표로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그는 프랜차이즈 방식을 도입하면 서비스 품질이 떨어진다는 신념 하에 모든 매장을 직영점으로 운영했다. 슐츠는 대표 취임 5년 만인 1992년에 스타벅스 매장을 165개까지 늘렸고 주식시장에도 상장했다. 2000년 슐츠가 과로를 이유로 CEO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스타벅스의 주가는 10배가 넘게 뛰었다.

2008년 슐츠는 다시 스타벅스로 돌아와 두 번째 혁신을 시작했다. 당시 스타벅스는 성장 동력을 상실해 경쟁사들이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온 상황이었다. 슐츠는 기존 경영진을 대부분 내보내고 부실 매장 수백 곳을 정리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커피 맛’을 되살리기 위해 모든 매장 문을 일시적으로 닫고 전 직원에게 에스프레소 교육을 다시 시키기도 했다. 스타벅스의 상징과도 같은 ‘리워드 제도’도 이때 도입됐다. 2019년 현재 스타벅스 매장은 2만8000여개에 이른다.

◇ 슐츠의 경영 철학…"직원이 첫 번째, 고객은 두 번째"

하워드 슐츠 전 스타벅스 회장은 전세계 24만여명에 이르는 스타벅스 임직원을 이끌어왔다. 미국 CNN은 ‘슐츠가 어떻게 스타벅스를 운영했는가’를 분석하면 ‘슐츠가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인가’를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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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하워드 슐츠 /howardschultz.com


슐츠는 항상 "직원이 첫 번째고, 고객은 두 번째"라고 말해왔다. 행복한 직원들이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행복한 고객을 만든다는 믿음에서였다. 그는 스타벅스를 ‘진보적 아이디어의 요람’처럼 운영했다. 생계비를 고려해 임금을 책정했고, 회사의 이익을 모두 함께 나눠야 한다는 신념 아래 말단 직원에게까지 스톡옵션을 제공했다. 인종·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이는 데도 목소리를 높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대학에 턱걸이했던 경험 때문일까. 슐츠는 정규직 뿐만 아니라 계약직 직원들에도 대학등록금을 전액 지원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1988년부터 모든 직원에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남성에게도 출산휴가를 지급하는 등 복지제도도 확충했다.

슐츠는 빈곤층과 난민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슐츠는 2011년 우범지역으로 악명높은 뉴욕의 할렘에 ‘커뮤니티 스토어’를 오픈했다. 할렘 현지인을 고용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익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이었다. 2017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난민 정책에 대항해 "5년 동안 스타벅스에 난민 1만명을 고용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 트럼프 킬러인가, 민주당 킬러인가

슐츠는 지난달 29일 "민주당과 공화당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중도층이 42%는 된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에 격렬히 반대했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외신도 슐츠의 출마를 비판하는 논평을 쏟아냈다. 슐츠가 ‘트럼프 킬러’가 되기는커녕 랄프 네이더와 같은 ‘공화당 도우미’가 될 것이란 우려에서였다.

소비자운동가 출신인 네이더는 조지 W.부시(공화당)와 앨 고어(민주당)가 맞붙은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에 불참하고 제3의 후보로 출마했다. 네이더는 약 290만표를 얻었는데,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 표를 더 많이 뺏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더 덕분에 조지 W. 부시는 간발의 차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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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슐츠 전 스타벅스 회장은 지난달 29일 “민주당과 공화당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중도층이 42%는 된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로이터


니라 탠던 미국진보센터 대표는 "슐츠의 허영심은 민주당을 박살낼 것"이라며 "그가 대선에 출마하면 나는 스타벅스 불매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존 딜레이니 전 하원의원도 "슐츠가 중도파의 중심이 되면 트럼프가 승리한다"고 비판했다.

슐츠가 정말로 2020년 대선을 무소속으로 완주할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승산이 없다면 불출마하거나 민주당 경선에 합류할 수도 있다. 슐츠의 선거 참모이자 오바마 전 대통령의 언론 담당 비서관이었던 빌 버튼은 "슐츠는 100% 실현 가능한 경로를 봤을 때만 끝까지 달릴 것"이라고 했다.

슐츠가 순순히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다면 ‘끝까지 달리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민주당 대선주자 중 가장 우위를 차지한 것은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이다. 해리스 의원은 ‘트럼프와 가장 다른’ 여성·유색인종 후보라는 점에서 경쟁력을 획득했다. 뒤를 잇는 다른 주자도 대부분 여성이다. 정치전문가들은 "백인·남성·억만장자 사업가인 슐츠는 트럼프와 유사한 특질을 갖고 있다"며 "‘트럼프 혐오증’에 빠진 민주당 지지자들이 경선에서 슐츠에게 투표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슐츠가 무소속 후보로 나서면, 민주당에 두 가지 선택지를 강요할 수 있다. ‘삼파전을 벌여 트럼프에게 재선을 허용하거나’, ‘슐츠를 민주당 대선후보로 영입해 정권교체를 노리던가’하는 선택지다.
무소속 출마를 무기로 경선판을 뒤흔드는 전략은 사실 트럼프가 먼저 써먹은 전략이다. 트럼프는 2015년 공화당 경선에서 "지면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당 지도부와 지지층을 협박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결국 ‘문제적 후보’였던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추대할 수 밖에 없었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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