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교육 제대로 받은 적 없는데
젊은층 ‘젠더 갈등’ 부각시켜
페미니스트 남성 모임 ‘남함페’
가부장제·성차별 구조 바꾸기 나서
20대 남성 절반 “미투 지지”도
“성별인식 격차 줄여나가는데
남성들이 변화 주체가 돼야”
[미투, 용기가 만든 1년] 2018년 1월29일,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한국의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여성들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고발에 함께하겠다는 연대도 이어졌다. 이들의 말하기는 그동안 한국 사회가 묵인해온 비뚤어진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이제는 새로운 시민성이 필요하다는 외침이다. ‘미투’에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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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성이 (무조건) ‘진보적’이었던 적은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군대 문제 등으로 보수적인 남성도 많아요. ‘젊으면 으레 진보적일 것’이란 고정관념 아닌가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건 ‘젠더 갈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란 분석에 대한 이한(28)씨의 답이다. 이씨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남함페)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20대 남성’이다. 2017년 페미니즘 독서토론 모임으로 시작한 ‘남함페’는 지난해부터 ‘페미니즘 활동 모임’으로 개편하고, 가부장제와 성차별 구조를 바꾸는 것을 목표로 활동한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80여명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모이고 ‘페이스북 페이지’로 소식을 전하며 활동을 이어간다. 이들은 지난해엔 강남역과 혜화역에서 페미니즘을 알리는 전단지를 배포했고, ‘곰탕집 성추행 사건’ 때는 “피해자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지 말라”는 집회를 열었다. 유독 20대 남성을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집단으로 부각하고, 젊은층의 ‘젠더 갈등’에 주목하는 최근의 흐름에 대해 이들은 할 말이 많았다.
이한씨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기성세대도 혼돈이 왔겠지만, 20대 남성들 역시 이 페미니즘의 물결이 어색한 건 사실이에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성찰의 기회도 없었고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잖아요. 그게 면죄부가 되진 않겠지만, 차별을 온몸으로 겪어온 여성들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남함페’에서 활동하는 남기윤(23)씨는 남성권력이 지닌 편리함을 말했다. “4050세대에 비해 손해를 보는 것도, 청년실업 등으로 20대가 힘든 것도 맞아요. 하지만 20대 남성은 동년배 여성보다는 권력이 있는데 인지를 못 하는 거잖아요. 불법촬영, 채팅방 성희롱, 대학 신입생 때 외모평가 등에서 남학생들은 그 대상이 잘 안 되는데도요.”
이처럼 ‘미투’ 운동이 가져온 변화는 성별을 뛰어넘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 15일 20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사회의 성평등 현안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성평등 실현을 위한 동력으로서 20대 남성의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연구원이 지난해 7월과 11월 두차례에 벌인 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남성의 14.6%(7월), 10.3%(11월)가 “페미니스트이다”라고 답했다. 10명 중 1명꼴이다.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남성 응답자의 절반가량(56.5%, 43.6%)이 지지 의사를 밝혔으며,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제에 대해선 10명 중 7명(71.3%, 68.2%)이 “관심 있다”고 응답했다(그래프 참고).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성별 인식 격차를 줄여나가는 데 남성들이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투’를 지지하고 공감하는 이들이 다른 남성을 설득해 함께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남함페’의 허민영(34)씨는 주변에서부터 변화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성차별이나 페미니즘에 대해 친구와 밤새 이야기를 하며 설득에 나서거나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부적절한 발언이 나왔을 때 제지를 하는 건 그의 몫이다.
“한 모임 자리에서 동료가 ‘미투 당하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발끈 화를 냈어요. ‘미투’를 당하지 않게 조심하는 게 아니라 성추행, 성희롱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거라고 말했죠. 그 순간엔 분위기가 조금 싸해지긴 했지만 이후엔 서로 (잘못된 발언을) 조심하는 분위기가 생겼어요.”
‘미투’ 운동이 ‘이제는 보다 예민한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사회 구성원들이 자각하게 만들었다고 ‘남함페’는 입을 모았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진 권력 구조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형태의 시민성을 고민하며 실천하는 계기가 됐다는 의미다.
이씨는 “페미니즘은 (그동안) ‘정상’이라고 여겼던 개념을 뒤흔들면서 획일성을 다양성으로 바꿔 나가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동안 사회가 남성만을 주체로 여겨왔다면, 이제는 그 범위가 여성, 장애인, 동물 등으로 확장됐다는 얘기다.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퀴어, 장애인 인권, 동물권, 환경권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시야가 넓어졌다”고 했다. 여론조사가 말하지 않는, 세상의 짐작과는 다른 남성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고 ‘미투’ 운동을 지지하면서다. <끝>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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