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12회 리영희상 본상 받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결심 공판이 열린 21일 오후 박정훈 대령이 지지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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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사건은 우리 사회에 감춰져 왔던 어두운 부분들을 세상에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을 보였으며, 이제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8일 제12회 리영희상 본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수상 소감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리영희재단(이사장 김효순)은 “박 대령은 군과 정부 고위층의 자의적이고 불법적인 지시와 명령을 거부하고 법과 원칙, 양심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등 공직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소신 있는 공직자로서의 처신이 폐쇄된 군 내부에서 발생한 수많은 인권 유린 및 의문사 사건 피해자와 가족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고 군의 정치적 중립화와 전문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였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재단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 탄광에서 조선인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희생된 사건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유골 발굴에 노력하는 일본의 시민운동 단체 ‘조세이(長生)탄광의 물비상(水非常·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에는 특별상을 주기로 했다.
재단은 2013년부터 우리 사회의 은폐된 진실을 밝히는 데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리영희상을 시상해왔다. 시상식은 내달 2일 오후 4시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열린다.
박 대령은 소감문에서 “리영희상은 저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고 채 상병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진실을 밝히라는 엄중한 말씀으로 알고 겸허히 받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7월17일 수해 현장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다 강물에 휩쓸려 사망한 채 상병의 주검 앞에서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결연한 다짐을 가슴속에 새기며 채 상병 사망 사건 조사에 나선 그는 해병대 제1사단장 등 지휘관계자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국방부 장관까지 대면 보고해 승인을 얻었다. 하지만 그가 소감문에 밝힌 대로 “2023년 7월31일 02 800 7070으로 대통령실에서 국방부 장관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일로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 할 수 있겠는가”라는 대통령 격노로 사단장 구명을 위한 외압이 시작되더니 그는 수사단장에서 해임되었고 급기야 이름도 무시무시한 ‘집단항명수괴죄’ 피의자가 되었다. 군 검찰은 지난 21일 그에게 ‘채아무개 상병 순직 사건’ 이첩 보류 지시를 어겼다는 혐의를 씌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선고 기일은 내년 1월9일이다.
가톨릭 신도이기도 한 박 대령은 현재 고립된 사무실에서 독서, 글쓰기, 산책, 뉴스 시청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명상과 기도도 하고 있다. 현역 군인 신분이라 인터뷰가 제한되어 김규현 변호사를 통해 소감문 외 심경을 들었다.
박 대령은 소감문에서 정의의 승리를 확신한다고 했다. 그 이유를 궁금해 하자 김 변호사는 “늦든 이르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박 대령은 법과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역사 앞에 당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채 상병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뭐가 시급하냐는 질문을 두고는 김 변호사는 이렇게 밝혔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수사가 필요한데 1년이 넘어도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방법은 특검이고, 박 대령도 같은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입이 틀어막힌 시대에 진실을 말하다 고초를 겪었다. 박 대령 역시 진실을 붙들다 참담한 상황을 맞고 있다. “박 대령은 리영희 선생에 대하여 언론 등을 통해 알고 있었고,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언론인으로서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이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밝히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박 대령이) 군사경찰로서 이번 해병대원 순직 사건의 진실을 공정하게 밝히려고 한 부분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허위와 맞서는 박 대령의 지난한 고투를 보면서 해병대의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정직’이 ‘충성’과 나란히 놓여 있다는 게 새삼 부각되고 있다. 군인에게 정직은? 김 변호사는 박 대령의 심중을 이렇게 읽었다.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삽니다. 정직하지 않은 군대가 명예로울 수 없는 법입니다. 정직한 군인들이어야 전우들이 서로 신뢰하고, 조국을 위해 희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1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박 대령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가르친 적이 없고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교육했기 때문에 오늘의 박 대령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박 대령은 ‘거짓말하지 말아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라’는 어머니의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이런 말은 박 대령이 성실하게 군 생활을 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된 것으로 압니다”고 덧붙였다.
박 대령은 어릴 때 제복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군인의 길을 가겠다는 뜻을 품지는 않았단다. 대신 근면 성실하게 살자는 생각이 컸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해병대 보병 장교로 입대한 뒤 법학을 전공한 탓에 헌병대로 차출되면서 장기복무의 길로 나아갔다.
군인 박정훈의 롤모델은 이순신 장군이다. 28년 군 생활 중 가장 명예롭거나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김 변호사는 “이번 채 상병 순직 사건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박 대령은 만약 자신이 국방부의 불의한 지시에 타협했더라면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채 상병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기에 가장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가장 명예로운 선택을 한 것으로 압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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