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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세상읽기] 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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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삶이란 무엇일까. 단지 생존하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과 죽음은 인류에게 가장 심오한 질문이다. 철학과 과학을 포함하여 모든 학문의 궁극적 질문은 삶의 의미에 맞닿아 있다.

프랑스에서 활동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1952년 발표한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무심히 하나의 상황을 던진다. 무대에 한 그루 나무가 서 있고 두 사람이 대화를 한다. 둘은 고도를 기다린다. 그런데 아무도 고도가 누구인지 언제 오는지 모른다. 다만 기다릴 뿐이다. 기다린다는 사실만 명확하다.

이 상황은 현대인의 삶과 놀랍도록 닮았다. 지하철을 타면서, 입시를 준비하면서, 강의를 들으면서, 무언가를 추구하지만 정확히 실체가 무엇이고 왜 추구하는지 알지 못한 채 군중 속에 휩쓸려 흘러간다. 우리는 매일 이 같은 상황과 마주한다.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지친 우리도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린다. 답답한 현실에서 구해줄 '어벤져스'를 기다린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를 단번에 구해줄 고도는 없다. 어느 정치가도, 어느 철학자도, 어느 과학자도 고도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찾고 싶어도 현실에서는 누구도 고도가 될 수 없다. 안타깝게도 베케트의 작품이 처음 시연된 프랑스에서도 현실의 부조리에 지친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혼란에 빠진 프랑스 사회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 전체를 단번에 구원할 고도는 없다.

통계청은 매년 출생과 사망 통계를 토대로 나이에 따른 생존 확률을 추산하여 생명표를 작성한다. 생존 확률은 나이가 늘면서 점차 감소하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되며 이것을 '생존곡선'이라 부른다. 인간의 생존곡선은 다른 생물 종과 확연히 다른데 대부분 사망 빈도가 노년에 집중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현대인 대부분이 장수를 누린다. 생존곡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생존곡선에 담긴 삶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평균수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면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장수를 누리고 있다. 특히 한국은 평균수명이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인류가 더 오래 살게 된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생존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일까.

삶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 누구나 외톨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사랑을 갈망한다. 마치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고 수많은 분자가 모여 '사물'을 구성하듯 우리도 사랑의 힘으로 가족을 이루고 사회를 구성한다. 사물의 물성이 분자 결합에 의존하듯 사회의 응집력은 가족의 결합력에 의존한다. 분자 내 결합과 분자 간 결합이 강하면 당연히 사물은 단단하다. 사물의 응집력이 강할 때 외부 힘에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가족과 사회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

사회 전체를 구원할 단 한 사람의 고도는 없지만 어쩌면 누구나 고도가 될 수 있다. 2003년 개봉한 영화 '코어'는 갑자기 멈춘 지구 핵을 고치기 위해 지구 중심으로 떠나는 탐사대의 모험을 그린다. 영화에서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인물은 탐사대 일원으로 나온 르베크 박사다. 무기 전문가인 그는 탐사선이 분리되는 불의의 사고에서 목숨을 건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동료에게 자신의 노트를 건넨다. 그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세상을 구하려는 게 아니야. 사랑하는 가족을 구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만 있으면 좋겠어." 결국 그는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그가 건넨 노트는 인류를 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비록 강하지 않았지만 그는 가족을 지켰다. 한 사람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진정한 영웅이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고도의 모습이 아닐까.

사회를 변화시키는 핵심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지혜와 용기의 근원은 사랑에서 발현된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지킬 지혜와 용기가 있다면 누구나 고도가 될 수 있다. 사회를 바꿀 씨앗이 될 수 있다.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영웅은 사회도 지킬 수 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고도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원병묵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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