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맹자 몰라 인성 망가졌나
언어·신체 폭력 횡행하는 건
이성만 강조하고 감성 죽인 대가
교감 없는 삶은 영혼 질식시켜
은둔은 상처 안 받겠다는 절규
자살 시도는 공감해달라는 신호
비교는 아이들 죽이는 또다른 독
약점 보완보다 강점 살리게 해야
삶은 다른 사람과의 격투기 아닌
내 목표에 집중하는 활쏘기 닮아
공감이 나와 타인 함께 살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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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를 모르겠다>(레드박스 펴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코칭지원센터 권수영(53) 소장이 펴낸 신간 제목이다. 내 마음을 모르니, 남의 마음을 알 리 없고, 그러니 서로 통할 리 없다. 구랍 28일 서울 신촌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저자를 만나 불통시대의 해법을 물었다. 권 소장은 연세대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권 소장도 미국 보스턴대와 하버드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인교회에서 3년간 목회도 했지만,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에서 ‘종교와 심리학’ 으로 바꿨다. 그는 “우리의 살길이 ‘영혼의 돌봄’에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고 했다.
감정 표현과 본능을 억누른 대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고 난 뒤 느낀 점을 얘기하라고 한다. 가령 ‘한석봉과 어머니’ 이야기를 읽고 한석봉이 혼나는 장면을 읽고 나선 ‘공부엔 끝이 없다’거나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하면 그건 생각이다. 아이들이 ‘헐, 억울하겠다’고 한 게 느낌이다. 그런데 이렇게 감정 표현을 하면 ‘미친놈’ 취급을 한다.”
이렇게 이성과 지성만 강조하고 감성을 죽이면서 아이들이 숨을 쉬기 어렵게 됐다고 한다. 학교 폭력, 가정 폭력도 감성이 죽은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닥으로 떨어진 인성 회복을 위한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들어 학교 현장에서 주로 철학이나 윤리, 인문 교육만 하는 것도 아직 감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아이들이 공자, 맹자를 몰라서 인성이 망가졌나. 인터넷의 심각한 댓글 폭력도 공감 상실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폭력적인 댓글을 달거나 언어폭력, 신체 폭력을 가하면 상대가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수치스러울까’란 감성이 살아나야 하는데, 아이큐만 강조하고 감정이나 본능을 억제하도록만 한 대가다. 엄마도 매니저나 감시자 같은 말만 하고, 학교나 직장에 가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는 분위기가 아이들을 좀비로 만들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인성이 나빠진 게 아니라 지나치게 감성을 죽인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그는 감성적 공감을 영혼의 산소라고 말한다. 라틴어로 영혼과 숨은 어원이 같다고 한다. 그는 ‘영혼의 숨’인 감정 교감이 없으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게 된다고 했다.
“자해하는 아이들도 자신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공감을 받지 못해 영혼의 숨을 쉬지 못하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정말 살아 있는지 보려고 자해를 해 피가 나게 하는 것이다.”
빠른 해결보다 아픔 공감이 더 중요
그는 감정 교감이 사라지면 영혼이 질식한다고 경고한다. 감정 교감이 없으면 아무리 호화로운 주택에 살아도 숨이 막히는데, 그간 우리는 먹고사는 일만 중시하는 대신 감정 교감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공감을 뒤로하고 기계적 성과만 중시하면서 청소년들은 이제 로봇만도 못하다고 자신을 비하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로봇의 좌뇌는 만들 수 있어도 우뇌는 만들 수가 없다. 인공지능은 미리 가지고 있는 정보로 일방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가슴으로 교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를 붙들고 엉엉 울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빠른 성과만을 고대하는 학부모들은 마치 로봇처럼 자녀에게도 빨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법만을 사용했다고 꼬집었다. 가령 ‘수학 문제가 안 풀린다’고 공책을 던져 버리는 아이를 두고 엄마는 ‘그 성질머리부터 고치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머리로 파악해 신속한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공감해주는 것이란다. 즉 ‘많이 속상하지? 내일이 시험인데, 문제가 그렇게 잘 안 풀리면 정말 불안할 거야’라고 교감하면 아이가 훨씬 쉽게 감정 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청년들이 은둔형 외톨이로 숨어들거나 니트족이 되는 것도 그게 좋아서라기보다는 더는 타인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겠다는 절규이며, 자살 시도도 단 한 명이라도 내게 공감해 달라는 신호라고 한다. 그는 ‘힐링’이라는 것도 맛있는 것 먹고, 여행하고, 공연 보는 개인주의로만 흘러 늘 마을에서 함께해 온 공유를 배제한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감정을 나눔으로써 나를 사랑하고 타인도 살리는 치유의 본질에서 멀어져가고 있다고 꼬집는다. 권 소장이 아이들을 죽이는 또 다른 독으로 꼽은 건 ‘비교’다.
“우리는 늘 약점을 가지고 비교를 하는 버릇이 있다. 반대로 강점으로 비교해 보자. 가령 ‘형은 공부를 잘하는데 너는 왜 이 모양이냐’고 하는 대신 ‘형은 공부를 잘하지만, 너는 튼튼하잖아’라고 하면 크게 달라진다. 피겨 김연아 선수가 트리플 악셀을 아사다 마오처럼 못해 슬럼프에 빠졌을 때 오셔 코치를 만났다. 오셔는 ‘트리플 악셀에 집착하지 말고 넌 너의 것을 찾아라’고 권유했다. 그만의 강점인 예술적 표현력을 살리도록 해 결국 챔피언이 되게 한 것이다.”
성인병·과체중도 공감해주면서 나아져
권 소장은 자녀 가운데 공부를 좋아하는 첫 아이와 달리 둘째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자 고교를 그만두게 하고, 미국으로 보냈다. 자기만의 강점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비교하고 경쟁하는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삶을 격투기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삶은 활쏘기라고 한다. 남을 의식하기보다는 자기감정이나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여유와 숨을 되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신의 몸으로 확인한 적이 있다. 2004년 교수로 임용된 뒤 그는 일 중독자로 살면서 과체중에 고혈압 등 온갖 성인병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2010년 명상이 생활화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8개월간 안식년을 보내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마음챙김 명상을 하는 듯한 피트니스 코치는 ‘왜 한국인들은 극기훈련 하듯이 운동을 하고,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면서 티브이를 보느냐’고 했다. 무리하지 말고 아침저녁으로 15분씩만 하라는 것이다. 질리지 않게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며 몸과 대화를 하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했더니 내 몸이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몸을 상상하며 내 영혼에 발동이 걸렸다.”
그 뒤 하루도 빼지 않고 운동을 지속해온 덕에 체중은 15kg이 빠지고, 고혈압약도 8년째 끊고 있다고 한다. 그는 “내 몸과의 공감이 나를 살렸듯이, 공감이야말로 나와 타인을 동시에 살리는 길”이라고 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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