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한국일보]삽화 대리운전 그래픽=신동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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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시에서 대리운전을 하는 김용주(45)씨는 1일 오전 1시쯤 손님한테 봉변을 당했다.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이라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추위를 뚫고 20분이나 걸어갔는데, 김씨를 면전에 두고 가족으로 보이는 손님 일행이 “한 잔 더 하자”라고 의기투합하더니 사라져버린 것. 이들의 ‘노쇼(no-showㆍ예약 취소)’ 탓에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대리기사는 김씨 외에 두 명이 더 있었다. 김씨는 택시비 5,000원을 모아 대리기사 콜이 많은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는 “그렇게 피크타임을 놓치고 나면 사실상 그날 영업을 종치게 된다”라면서 “나름 10년이나 돼 베테랑 소리를 듣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 그저 억울하고 허탈한 기분밖에 안 든다”고 했다. 실제 김씨는 이날 평소 평균 6건의 절반인 3건밖에 운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연말연시 대리운전기사들은 울상이다. 송년회나 신년모임 등 단체 술자리가 많아 일감이 한꺼번에 몰리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기사들을 곤욕스럽게 하는 승객들의 노쇼 역시 그만큼 빈번하게 벌어져서다.
기사들이 겪는 황당한 취소 사유는 수도 없다. ‘신입’ 박모(21)씨는 성탄절 전날인 지난달 24일 오후 11시30분쯤,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대리운전 호출을 받고 즉시 하차했다. 15분 걸려 서울 노원구 출발지에 도착해 승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은 건 승객 친구. “친구가 너무 취해 곯아떨어져 지금 귀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호출을 취소한 것이다. 그는 “그날에만 두 건이나 일방적으로 취소를 당하고, 결국 빈손으로 하루 장사를 접었다”고 하소연했다. 업체 여러 곳에 호출을 불러 놓은 뒤 가장 먼저 도착하는 기사의 차를 타고 말 없이 떠나거나 기사 앞에서 갑자기 “요금이 비싸서 못 가겠다”고 뒤늦게 어깃장을 부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승객에겐 사소하겠지만, 기사들에게는 치명타다. 손님이 부른 출발지까지 거리가 대체로 길고 대부분 심야시간이라 기사들은 도보로 이동하거나 택시를 이용하는 게 보통. 게다가 대리운전기사들의 하루 운행 건수가 평균 5, 6건이라 노쇼 한 번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 이상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11시쯤 노쇼를 당했다는 기사 이상호(33)씨는 “보통 하루에 1, 2번은 이런 식의 취소를 겪어서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고 말했다.
노쇼 손님에 대한 제재 수단도 딱히 없다. 대리운전업종이 ‘자유업’으로 분류돼 있어서 규제할 법규가 없고 지방자치단체도 관리ㆍ감독에 손을 놓고 있다는 게 기사들의 불만이다. 김종용 전국대리기사협회장은 “대리운전 관련해 제대로 된 법과 제도가 없으니 기사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콜 취소 시 일정비용을 소비자가 부담하게 하는 등 제도적인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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