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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36.5˚C] 인터넷 시장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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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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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철수했지만, 생방송 플랫폼인 트위치를 여전히 중요한 지표로 본다. 트위치가 방송 카테고리(주제)를 게임별로 정리해 주기 때문에, 특정 게임을 하는 스트리머(인터넷 방송인)가 얼마나 시청자를 모으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Anime Squad'라는 괴상하게 인기 있는 게임 카테고리가 있다. 눌러 보면 실제로 이 게임을 하는 방송이 아니다. 영화, 애니메이션, TV쇼 등 온갖 종류의 영상을 무허가로 재송출하는 방송들이 일부러 한 카테고리를 점령해 방송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명백한 저작권 침해다. 트위치는 이런 방송 계정을 정지하고 반복되면 종료 조치를 취한다. 그만큼 많은 계정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또 도둑 방송을 한다.

트위치를 비롯해 대부분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창작자의 규칙 위반은 '원 스트라이크 아웃'이 아니다. 경고, 정지, 그래도 안 되면 드물게 영구 퇴출. 창작자들은 "잘 몰라서" "실수로" 규칙을 위반한다. 그렇기에 몇 번은 기회를 주는 게 맞다. '명백한 불법'의 증거나,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민심 이반'이 없으면 창작자들에 대한 제재는 없다.

아프리카TV가 SOOP으로 이름과 브랜드를 모두 바꿨지만, 말 많은 '엑셀방송'은 그대로 있다. 정찬용 대표가 최근 온라인 콘퍼런스콜에서 "보기 껄끄럽다고 제재하면 UCC 플랫폼이 될 수 없다"고 한 건 단순 변명이라기보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다. 특정 방송을 특정한 이유로 제재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 "저 방송은 왜 제재 안 하냐"는 '공정성' 논란이 관련 커뮤니티를 불태우게 마련이다.

그래서 플랫폼 사업자들은 항상 법과 윤리의 경계에 서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고개를 돌리는 방법을 택했다. '딥페이크'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뻑가'가 "호들갑"이라 발언해 댓글창뿐 아니라 온 언론의 비판이 쏟아졌을 때 유튜브는 비로소 해당 채널의 수익창출 정지를 결정했다. 이마저도 '공정한' 기준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네이버 웹툰이 '이세계 퐁퐁남'을 아마추어의 등용문 '도전만화'에 공모작으로 올려세우면서 시작된 불매 운동으로 이용자가 급감했지만, 이 회사는 적극적인 대응보다 '공정한' 절차에 따라 문제의 웹툰을 내리고 조용히 묻어가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우리 앞에 등장하면서 개발 경쟁과 서비스만 다시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규제 틀도 다시 쓰고 있다. 정보기술이 '의도 없는' 인터넷을 넘어 콘텐츠를 '의도 없이' 양산하기 시작하면서 경계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남의 음성과 영상을 합성한 저작권 침해, 가짜 이미지 합성을 사용한 디지털 성폭력, 한탕을 노린 저질 콘텐츠 등은 이미 기존에도 어느 정도 벌어졌지만 눈감아 온 인터넷의 부작용을 AI가 '강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인터넷은 최소한의 질서조차 잡는 데 실패했고 우리는 그 결과 더 혼란한 사회와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많은 정보를 무료로 흡수한 것은 모두가 공공선을 위해 정보를 공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규칙이 없었고 제대로 수익을 나누는 법도 몰랐기 때문이다. AI를 향한 '규제' 공세를 맞은 IT업계가 발전 속도의 저해만 말할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먼저 내놓는 게 어떨까.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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