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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한겨레 프리즘] 제천의 봄은 언제? / 오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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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윤주
전국2팀 기자


충북의 겨울은 제천으로 온다. 울고 넘는다는 박달재를 지나면 첩첩 산이다. 청풍호에 막힌 산은 차디찬 기운을 봄까지 잡아둔다. 시베리아에 빗대 ‘제베리아’로 부를 정도다.

꼭 1년 전, 지난해 12월21일 쌀쌀한 오후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복합센터에서 불이 났고 29명이 숨졌다. 지독한 추위를 견디려고 천장 배관에 감은 열선 과열 등이 원인이었다. 제천은 추위가 두렵다.

그사이 제천은 어떻게 변했을까? 화재 참사 1년을 맞아 언론은 불법 주차, 안전 불감증, 사라진 시민의식, 침체한 상권 등 ‘제천 화재 1년’ 보도를 쏟아낸다. 충북도와 소방본부는 1년 사이 변화한 인력·장비·대처 관련 보도자료를 자랑처럼 낸다. 이제 같은 사고가 나면 우린 살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인재형’ 사건·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안전 대한민국은 여전히 물음표다.

유족, 부상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은 1년을 어떻게 견뎠을까? 참사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중앙·지방 정부 공무원, 정치인 등의 방문이 이어졌고,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하지만 유가족은 여전히 아프다. 이들은 요즘 재판 한번 받게 해달라며 ‘재판 청원’에 동분서주한다. 화재를 곁에서 본 유가족은 현장을 지휘한 제천소방서장·지휘조사팀장 등의 상황 판단과 조처가 잘못돼 희생이 컸다고 확신한다. 이들만의 억지일까?

소방청 합동조사단은 지난 1월11일 첫 브리핑에서 “당시 지휘관은 2층에 요구조자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현장 대원들에게 제대로 상황 전파를 하지 않았다. 지휘관으로서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고, 역량도 부족했다”고 했다. 그리고 ‘제 식구’인 이들 지휘관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3개월 뒤 2차 조사 발표에선 “비상계단을 통해 2층 진입에 성공했다면 일부라도 생존 상태로 구조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추정된다”고 한발 더 나갔다. 지난 7일 제천 참사 1주기 국제학술세미나에서 조성 충남연구원 연구원도 “현장 상황 파악과 인명구조 활동 등 현장 지휘가 미흡했다”고 진단했다.

사고를 조사한 경찰은 현장 지휘관을 단죄해야 한다며 1만2천여쪽 수사기록에 불구속 기소 의견을 담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수사심의위원회를 거쳐 불기소를 결정했다. 화재 진압에 집중한 소방관에게 인명구조 지연으로 인한 형사상 과실을 묻기 어렵다고 봤다. 현장 지휘관 2명은 직위해제됐다가 복직했다.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 때 국가는 해경을 처벌했지만, 제천 참사는 건물주·세신사 등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려 한다.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수용할 수 없다”며 재수사를 바라는 항고장을 냈다. 이들은 검찰 처분이 타당한지를 법원에 묻는 재정신청도 할 참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10월 충북도 국정감사에서 제천 화재 참사 재심을 제안했지만 이후 잠잠하다.

여론이 부담이다. 지금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소방관 처벌 찬반 청원 수십개가 올라 있다. 처벌 반대가 우세하다. 최근 충북도는 위로금 지급을 전제로 유가족에게 소방관 불기소 처분에 대한 항고 취하와 재정신청 포기를 제안했다. 유가족은 받아들일 뜻이 없다.

“시민의 소방관을 탓하거나, 뭘 바라고 떼를 쓰려는 게 아니다. 위험 속 시민을 구하지 않은 잘못된 조처를 재판에 세워 보자는 것이다. 이게 과한가?” 제천 화재 참사 유가족 대표의 하소연이다. 덮고 지나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제천 참사 치유의 봄은 언제 올까?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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