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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우리말이 나라 힘이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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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 ‘우리말 말살 카드’ 보도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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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수 | 전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



한글날 578돌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경복궁에서는 전 국민 받아쓰기 대회, 광화문광장에서는 한글 산업전, 한글박물관에서는 한글 패션쇼가 열린다. 국립국어원은 외식업체의 한글 메뉴판을 선보이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공기관의 바른 한글사용 캠페인을 벌인다. 심지어 미국 뉴욕 맨해튼에는 세계 50개국 7천여명의 인생 문구를 새긴 대형 한글 벽이 세워졌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글 창제 정신이다. ‘나랏말씀’은 어려운 한자어와는 달리, 모든 백성이 쉽고 편하게 쓰기 위한 글이다. 이는 언어 사대주의를 벗어나 우리말 독립을 선포하고 더 나아가 홍익인간 사상을 구현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한글 말살 정책에는 우리말을 쓸 때마다 상대방 카드를 빼앗는 ‘한글 말살 놀이카드’도 있었다. 이러한 일제의 탄압에서도 우리말을 지킨 분이 있다. 1930년대 현대문학의 대표작가 김유정 선생이다. 그의 소설 31편 속에 등장하는 8299개 표제어 중 토박이말이 6895개다. 전체 표제어의 83%다. 그는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고 학교에서 일본어 교육도 받았지만 그의 소설에는 한문이 거의 없다.



지난여름 일본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한 한국계 교토국제고는 개교 이래 지금까지 한국어 교가를 불렀다. 한국 교포가 30%, 일본 학생이 70%이다. 체육관에는 ‘홍익인간’이라는 액자도 걸려있다. 일본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질시와 냉대를 받았을지 짐작된다. 그렇게 지킨 우리말을 더욱 영예롭게 만드는 것은 후손들의 몫이다.



그런데 대도시 번화가의 간판은 한글 반 영어 반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는 찬반 투표에서 한자나 한글로 가(可)·부(否)를 표기해야 한다. 심지어 한자를 잘못 써 무효처리된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의 법조문은 보통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한자어 조합이다. 법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고액의 수임료를 부담하면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 의학 용어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진료 결과를 영어로 메모하는데 일반 환자들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환자 입장에서는 감히 따질 수도 없다. 법률시장과 의료시장은 소수 전문가의 배타적 성역이다. 마치 한자문화권에서 선비들이 문자 해독으로 양반 특권을 누렸던 것과 다름없다. 모든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말로 풀어쓸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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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틀랜타 국제공항의 셔틀열차 내 안내판.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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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2021년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 식민지를 경영하지 않고도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다. 미국 애틀랜타 국제공항의 셔틀열차 내 안내판은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다음에 한글이다. 러시아에서는 올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2천여명이나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취업이 어려워 러시아어 강좌를 폐강하는 국내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방탄소년단(BTS)의 전세계 아미(팬)들은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열공(열심히 공부)한다. 지구촌 어디를 가더라도 10대 청소년들로부터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받는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은 전 세계 언어 2900개 중에서 한글을 과학성, 독창성, 합리성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로 평가했다. 유네스코도 배우기 쉽고 쓰기 편리해서 세계 문맹 퇴치사업에 가장 적합한 글자로 한글을 꼽았다. 한글의 대중화와 세계화는 선진국의 위상에 걸맞은 시대적 소명이다. 미국이나 영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원동력은 바로 영어다. 다른 제국도 유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제 언어 사대주의에서 벗어날 때다. 우리말이 나라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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