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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위험의 외주화’ 방지 법안이 국회에서 ‘주변화’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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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송경화의 올망졸망

2016년 구의역 사고 뒤 반짝 ‘핫’했던 환노위

2017년 민주당 ‘정권교체’됐지만 관심 떨어져

국회 넘어오자 조직적으로 몰아친 ‘재계’

다시 정치권 화두 된 대책 법안, 이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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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떤 일이 터졌을 때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가면 법적 대안이 대체로 마련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각종 개정안부터 제정안까지 끊임없이 법들이 발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들어서만 1만7717건이 발의됐다. 이 가운데 어떤 법이 실제 최종 처리될지는 여론과 이해집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음주음전 사고 처벌강화법(일명 윤창호법)과 일부 ‘미투’ 법안은 거센 여론의 힘을 받아 다른 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처리됐다.

20대 국회가 처음 문을 연 2016년 6월, 산업재해 예방 법안들도 이런 힘을 받을 뻔했다. 불과 한달 전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던 19살 김아무개군이 홀로 승강장 안전문을 수리하다 참변을 당했다. ‘컵라면과 숟가락’ 유품으로 상징된 김군의 열악한 노동 여건은 사회적 공분을 샀다. 지난 11일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 비정규직 직원 김용균씨가 숨지자 2년7개월 만에 다시 주목을 받는 바로 그 사건이다.

■ 구의역 사고 직후…반짝 ‘핫’했던 환노위

2016년 6월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회의에서는 20대 국회 개원 직후 쏟아진 구의역 사고 관련 법안들이 논의 테이블에 한꺼번에 올랐다. 각 당 지도부가 너도나도 구의역 참사 현장을 방문한 직후였다. 위험 작업에 대한 하도급을 금지하고,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처 의무와 처벌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법안 논의의 중심이 됐다. 이날 회의에선 한국노총 출신의 비례대표 문진국 의원(자유한국당)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산재 재해로 희생되었지만 제대로 된 조사가 없었고 재발방지 대책은 서류만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의역의 억울한 희생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국회 먼저 머리 숙여 반성하고 노력해야 하며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전 행정부가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서 재발방지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하면서 질의하겠습니다. (중략) 산재 은폐가 근절되지 않는 주요 이유는 산재보험료 산정 방식과 잘못된 원-하청 구조 때문인데, 산재가 적으면 보험료가 할인되어 수주 경쟁이 치열한 건설 현장에서 산재를 은폐하고 있고요. 하청업체에서 산재가 발생하면 벌점을 부여하고 반복되면 계약을 끊기 때문입니다.”

변호사 출신 김삼화 당시 국민의당 의원도 말을 보탰다.



“그동안 원청업체가 과실은 취하면서 이런 사고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던 것도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산재 사고가 나면 행위자에 대해서는 처벌하고 있는데 그와 별개로 반복되는 중대한 재해에 대해서는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법인에 대해 매출액의 일정 비율에 대한 벌금을 내게 한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 방안도 이제는 검토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언급되는 대안들과 대동소이한 얘기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은 관련 논의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노동계 출신 소수 의원의 목소리만으론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노동개악 5법’이라고 일컬어지던 노동시장 구조개혁 법안이 노동계 이슈로 떠오르면서, 민주당의 당력이 분산된 것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렸다.

■ ‘민주당 여당’ 됐지만 관심 떨어져

1년 뒤, 어쩌면 ‘적기’라고 할 만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2017년 5월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을 했던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우원식 의원이 여당 첫 원내대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해 6월 민주당이 여당인 국회가 개원한 뒤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대한 논의가 자취를 감췄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는 등 인사 관련 이슈가 지배적인 상황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산업재해에 대한 관심이 식은 상태였다. 당시 환노위에 있던 한 야당 의원은 “구의역 사고 직후엔 의원들의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정권 교체 뒤엔 관심을 이어갈 사건도 계기도 없었다”며 “그 외에도 노동 관련 법안들은 여야 갈등이 첨예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줄어든 산업재해 관련 법안들은 논의에서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여당의 진단도 비슷했다. 민주당 환노위의 한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 이슈가 워낙 세게 붙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걸 가로막았던 측면이 있다”며 “산업 안전 쟁점은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라고 했다. 다른 의원은 “이건 여야 따질 것 없이 다 우리의 탓”이라며 “김용균씨는 우리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 20대 국회 하반기가 시작되면서 교섭단체 협상 결과에 따라 환노위원장은 민주당에서 자유한국당(김학용 의원)으로 넘어갔다.

뒤늦게 정부가 나섰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을 내놓아 흩어져 있던 산업안전 관련 논의를 한데 모은 것이다. 1990년 전면 개정 뒤 28년 만의 시도였다. 정부는 지난 2월9일 전면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가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전면 개정안은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을 대폭 늘리고, 안전보건조처 위반으로 노동자가 숨졌을 때 사업주가 받는 징역형에 ‘1년 이상’의 하한형을 새롭게 추가하면서 처벌을 강화했다. 유해작업의 하도급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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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넘어오자 조직적으로 몰아친 ‘재계’

입법예고가 시작된 뒤 화력을 집중한 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였다. 경총은 3월21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에 대해 “보완이 필요하다”며 정부에 수정 의견을 제출했다. ‘1년 이상 징역형’을 명시한 처벌 규정이 “과도하다”며 재검토를 요청했다. 유해작업의 하도급 금지 조항도 “기업의 계약 체결 자유를 제약한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4월18일에는 ‘산업안전보건 정책 개선 토론회’를 주관했다. 전문가들은 이 토론회에서 정부안이 “영업 비밀 유출의 우려”가 있으며 “처벌이 과도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부의 전면 개정안은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 계류돼 있었다. 결국 8개월 만인 10월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개정안에서는 ‘1년 이상’의 하한 기준선을 제외했다. 재계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법안이 국회로 넘어온 뒤 손경식 경총 회장의 보폭은 커졌다. 11월26일 법무부와 함께 ‘기업 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안 간담회’를 열어 “산업안전보건법, 공정거래법, 협력이익공유제 같은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안 개정이 한꺼번에 추진되면서 경제 심리가 위축되고 기업의 미래에 대한 투자 의욕이 크게 저하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함께한 자리였다. 그의 동정은 주요 일간지에 보도됐다. 경총은 12월7일 산업안전보건법 등 8대 법안의 문제점을 ‘종합 의견서’로 작성해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기업에 친화적인 연구기관들도 손을 보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달 11일 114개 주요 대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설문결과를 발표했다. “전반적인 방향성은 맞지만 현실 여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가 65.8%로 가장 많았고, “근로자의 의무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가 19.3%, “현행 수준으로도 충분하다”가 8.8%라는 내용이었다. 이 역시 경제신문 등에 일제히 보도됐다. 재계가 가진 스피커는 ‘구의역 김군’들의 그것보다 훨씬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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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이 법에 대한 국회 논의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선 탄력근로제 관련 여야 이견 때문에 노동 관련 법안을 심사하는 환노위 고용노동소위원회가 제대로 열리지 못했고 이 법에 대한 논의는 한번도 이뤄지지 못했다. 그사이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는 정부 제출 법안에 대한 의견이 174건 등록됐는데, 대부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예산안 통과와 함께 정기국회가 마무리된 직후인 지난 11일 김용균씨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어 숨졌다.

우원식 의원은 김씨가 숨진 이튿날 충남 태안의 빈소를 찾았다. 이후 페이스북에 긴 글을 올렸다.



“정말 할 말이 없다. 김용균씨의 죽음 앞에 을지로위원장을 지냈고 여당 첫 원내대표를 지냈던 사람으로 미안하다는 말 조차도 못하겠다. …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한 지 벌써 1년 반,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꽃다운 목숨을 잃고 제도 개혁을 약속한 지 2년 반이 됐는데 그동안 뭐 했냐는 질책에 할 말이 없다. … 정치란 힘이 약한 사람들의 가장 강한 무기라는 신념을 가지고 활동했는데 이 말이 맞는지 회의조차 든다. … 야당을 하며 그렇게 외치고 주장했던 일을 여당이 돼서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잠을 이루기 어렵다.”

여야는 17일부터 임시국회를 시작했다. 민주당은 산업안전보건법 등 사업자의 책임과 처벌을 높이고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법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19일 환노위 고용노동소위 일정도 잡혔다. 정부가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에 대해 노동계가 “재계 요구로 후퇴했다”고 비판하는 가운데 환노위 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은 보다 강한 수위의 의원 법안들과 정부안이 “병합돼 심사될 것”이라고 밝혔다. 잊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정치권 화두로 올랐다. 이번엔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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