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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만물상] 김용태 '자기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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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타계한 매케인 미 상원 의원은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나갔다가 1967년 하노이 상공에서 격추돼 포로로 붙잡혔다. 이듬해 그의 아버지가 베트남전을 총괄하는 미 태평양사령관에 임명되자 북베트남군은 선전용으로 쓰려고 매케인에게 석방을 제의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자기보다 먼저 들어온 포로가 모두 석방된 뒤 나가겠다며 제의를 거절했다. 결국 5년 넘게 포로 생활을 하면서 고문과 구타로 더는 조종을 할 수 없는 몸이 됐지만 미국 국민은 매케인의 '자기희생'을 잊지 않았다. 매케인이 상원 의원 6선을 하며 공화당 대선 후보까지 지낸 밑천이 됐다.

▶제대로 된 지휘관은 "전투 현장에 내가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마지막에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부하는 이런 지휘관을 믿고 적진에 뛰어든다. 큰일을 도모할 때 자기희생은 첫 순서여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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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조강특위가 당협위원장에서 배제하는 현역 의원 21명을 발표했는데, 서울 양천을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한 김용태 의원도 이름을 올렸다. 김 의원은 조강특위 위원장이다. 누군가를 쳐내려고 칼을 뺀 장수가 자기 목부터 벤 것이다. 그는 "내 자리를 지키면서 동료에게 칼을 댈 수는 없다"고 했다. 인적 청산 규모가 작지 않았는데도 당내 반발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은 총선 공천과는 직접 관련 없는 문제여서기도 하지만 김 의원의 '나 먼저 청산'이 미친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는 2016년 말 탈당했기에 자신에게도 당 분열의 책임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가 다른 지역구에 출마할 수는 있지만 3선 의원이 어렵게 가꿔온 자기 지역구를 포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김 의원은 지난해 '문재인 포퓰리즘'이란 책을 썼다. 서문에서 "나는 최순실 사태를 거치면서 지난 대선에서 보수가 후보를 내는 것조차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문재인 정권의 폭주를 보고 더는 침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탈원전 같은 돌이킬 수 없는 국가 정책이 야당의 무기력과 보수의 지리멸렬을 틈타 마구 추진되는 문제를 비판했다. 책 말미에는 "국가주의 포퓰리즘 저지에 나서는 것이 이 시대 정치인의 소명"이라고 적었다. 그 소명을 위해 자기 목을 먼저 내놓은 것이라면 그 뜻은 인정받을 만하다.

▶우리는 지금껏 희생과 헌신은 없고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낡은 정치인을 신물 나게 봐왔다. 김 의원의 '셀프 청산'에서 자기희생과 같은 보수의 가치를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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