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9 (토)

[여론&정치] 20대 여성이 '與圈 버팀목'?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홍영림 여론조사 전문기자


2016년 말 미국 대선 직후 워싱턴주에 사는 게일 매코믹(73)은 남편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결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부부는 결혼 22년 차였다고 한다. 이 사례는 다소 극단적이지만 먼 나라 얘기로만 여기기 어렵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한 설문조사에서도 미혼 남녀의 절반이 "정치 성향이 다른 이성(異性)과는 소개팅도 하지 않겠다"고 답했으니 말이다.

청년 세대 연애와 결혼에서 중요 변수인 '정치 성향'에서 남녀 차이가 커지고 있다. 한국갤럽의 지난주 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20대 남성은 부정 평가(44%)가 긍정 평가(38%)를 앞섰다. 그러나 20대 여성은 긍정 평가(61%)가 부정 평가(22%)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30~40대는 남녀 모두 긍정 평가가 더 높았고, 50대와 60대 이상은 남녀 모두 부정 평가가 더 높았다. 그런데 20대만 윗세대와 달리 남녀 차이가 극명하게 엇갈린 것이다.

이에 대해 최근 부각되는 '젠더(gender·性) 이슈'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있다. 대선 때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한 문 대통령에 대해 20대 남성의 지지가 당초 탄탄하지 않았기에 지지율 침체기에 더 빨리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분석도 있다. 정연정 배재대 교수(정치학)는 "2008년 광우병 파동 이후 무상 급식 논란, 세월호 참사 등을 거치면서 젊은 여성들이 먹거리와 육아, 안전 문제에 관심이 커지고 진보 성향이 강해졌다"고 했다.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보수 정치권이 여성 관심사에 소홀하다는 공감대를 굳힌 20대 여성들이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 심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요인이다.

하지만 20대 여성이 언제까지 여권(與圈)의 버팀목 역할을 할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고용 한파가 심각해지면서 이들도 취업난을 겪다가 그 고통을 '반여(反與)'로 표출할 수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 20대 여성의 대통령 지지율은 11월 말 75%에서 지난주 61%로 14%포인트 내렸다. 하락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미국 마케팅·선거 전략 전문가 마크 펜은 저서 '마이크로트렌드X'에서 "주류가 변화를 이끄는 시대는 지났다"며 "작은 집단이 시장을 만들고 선거 결과를 결정하며 지각변동을 일으킨다"고 했다. 올 5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에서 '현재 정당 중에서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한 20대가 73%에 달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나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도 과반수(65%)였다. 정치 불신이 높지만 정치 무관심 세대는 아니란 뜻이다. 정치권이 20대의 트렌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들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홍영림 여론조사 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