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9 (토)

확 달라진 제천 소방서… 그대로인 시민의식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제천 화재 1년' 현장을 가다

시골소방대, 선도소방서 탈바꿈… 매일 한번 도면놓고 가상 훈련

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나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당시 화재는 총체적 부실에서 비롯된 인재(人災)로 기록됐다. 현장의 수많은 주차 차량으로 소방차 진입이 지체됐다. 출동한 제천 소방서 대원들은 도면을 챙겨가지 않아 구조가 지연됐다는 질타를 받았다. 뒤늦게 도착한 구조대는 에어매트리스를 설치하는 데 모두 동원돼 더 많은 인명을 구조할 수 없었다. 여론은 제천 소방서를 향해 '기본도 안 된 시골 소방대'라며 비난했다. 그랬던 제천 소방서가 지난 1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으로 '전국적인 선도 소방서'로 탈바꿈했다. 대조적으로 변함없는 시민의식은 여전한 숙제다.

조선일보

제천 참사 그 현장… 아직 소방차는 힘들다 - 지난 12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인근에서 소방 통로 확보 훈련을 하는 소방차가 양쪽에 주차된 차량 사이를 아슬아슬 빠져나가고 있다. 참사 이후 제천소방서는 전국 최초로 각종 화재 출동 체제를 정비하는 등 개선에 나섰지만, 시민 의식은 그대로라는 지적이다. /신현종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온이 영하 11도까지 떨어진 지난 12일 오전 제천 소방서에서는 소방관 10여 명이 호스 밸브 등 각종 장비를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한 소방관은 "지난 참사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각종 장비를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대를 마치고 퇴근하던 한 소방관은 커다란 가방을 차량 트렁크에 챙겨 넣었다. "비상 상황을 대비해 개인 방화복을 가지고 다니도록 돼 있다"고 했다.

참사 이후 제천 소방서는 매일 한 차례 다중이용시설 도면을 두고 가상 훈련을 했다. 이전에는 화재 발생 후에 강의 형식으로 진행했다. 이날 찾아간 한 팀장의 책상에는 다중이용시설 도면이 놓여 있었다. 진·출입로, 비상구, 구조 시 유의 사항 등의 내용이 빼곡했다. 팀장은 "매일같이 도상 훈련을 하다 보니 제천의 주요 다중이용업소 건물 구조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됐다"고 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층 사무실 한편에는 행정 업무 담당자의 이름이 굵게 표시된 '1일 출동부대 편성표'가 붙어 있었다. 참사 이전까지는 행정 업무 담당자는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 참사 이후 제천 소방서는 화재 초기 소방력을 집중 투입해 골든타임을 확보하도록 내·외근 구분 없는 화재 출동 시스템을 도입했다. 제천 소방서와 비슷한 규모인 각 지역 소방서들이 이 체제를 그대로 가져가 운용 중이다. 지휘 능력과 현장 대응력을 키우도록 불시에 각본 없는 훈련도 실시한다. 구조 버스에는 개인 안전 장비와 공기 호흡기 용기 보관함을 설치해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했다. 지난 1월 부임한 김상현 소방서장은 "사탈고피(蛇脫故皮·뱀이 묵은 허물을 벗는다) 정신으로 기본 시스템 정립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라며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제천 소방서가 실시한 소방통로 확보 훈련에서는 1년 전과 다름없는 시민의식이 드러났다. 훈련은 오전 10시 30분부터 화재 참사가 발생한 하소동과 평소에도 혼잡한 청전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출동한 지 5분도 안 돼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부터 길이 막혀 있었다. 아침 시간인데도 아파트 입구 양측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이 줄지어 있었다. 우회전을 해서 들어가려던 폭 2.5m의 11t 펌프차는 결국 진입에 실패했다. 심지어 일방통행로인 아파트 진입 도로에서는 역주행하는 차들이 잇따라 진입하면서 소방차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도 연출됐다. 한 소방관은 "이곳은 오후가 되면 양옆으로 차량이 빼곡히 주차돼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기도 벅차다"고 했다.

지난해 화재가 발생한 하소동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화재가 난 스포츠센터 건물 주변 도로는 지난해 참사 때와 같이 양측에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폭 2.37m의 5t인 중형 펌프차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시에서 여전히 주정차 규정을 정비하지 않은 탓이다. 센터에서 약 100m 떨어진 인근 대형 마트에서 주차를 허용했다고 해서 가보니 이날 그곳 주차 공간은 여유로웠다. 한 주민은 "멀리 세우기 귀찮아 센터 근처에 얌체 주차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훈련에 참여한 소방대원은 "소방차 진입이 곤란한 경우를 대비해 차량 견인 업체와 협약을 맺었다"며 "실제 상황에서 주정차 차량이 길을 막으면 즉시 견인해 진화에 나서도록 개선됐다"고 말했다.



[제천=신정훈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