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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에… 악기 찾는 '아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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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전 국내 최대의 악기 종합상가인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월요일 아침 영하 7도의 한파까지 겹쳤지만 일렉트릭 기타 매장 곳곳은 분주했다. 직원들은 악기 정리를 하느라 왔다갔다하고, 주인은 컴퓨터로 원격 문의에 응대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바쁘냐"고 했더니 ‘제일악기’ 박승원(35) 점장은 "컴퓨터로 휴대폰으로 수시로 문의가 오니 그때그때 사진도 찍고, 가격도 알려드려야 한다"면서 "‘퀸’이 낙원상가를 들썩이게 하네요"라고 했다.

전설적인 영국 록밴드 ‘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이 낙원상가도 덮쳤다. 박 점장은 "영화 개봉 이전엔 하루 한 건 정도 문의를 받았는데, 개봉 이후엔 출근과 동시에 3~4건의 문의가 들어온다"면서 "개봉 후 일렉트릭 기타는 3배는 더 팔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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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의 악기 종합 상가인 낙원상가에 진열된 일렉트릭 기타의 모습. /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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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0만 돌파’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에, 4050 ‘아재’ 기타 구매 줄이어
‘보헤미안 랩소디’는 10월 31일 개봉해 지난 15일 누적 관객 772만명을 돌파했다. 상영 7주째를 맞았는데도 흥행순위 2위를 기록 중이다. 역대 음악영화 최대 흥행 실적이다. 퀸이 활동한 1970~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40~50대 중장년층을 끌어모은 흥행의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은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고 있다. 지난주 멜론 하드록 차트는 1위부터 50위까지 단 한곡을 제외하고 퀸의 노래가 독식했다. KBS는 지난 9일 밤 '프레디 머큐리, 퀸의 제왕'이란 해외 다큐멘터리를 방영했고, MBC는 10일 밤 'MBC 스페셜 내 심장을 할퀸(QUEEN)'을 방영하기도 했다.

퀸 열풍은 이른바 ‘아재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뮬(Mule)’등 악기 사이트의 밴드 구인란에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퀸 카피밴드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퀸의 노래를 함께 연주할 4050 밴드원을 찾는다" 등의 게시물이 줄을 잇는다. 중장년층의 악기 구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낙원상가 한 악기점 점장은 "겨울엔 수능 끝난 고3이나 방학을 맞은 대학생 구매가 많은 편인데, 올해는 유난히 중장년층 구매가 많다"며 "주로 입문용 20~30만원대 일렉트릭 기타가 많이 팔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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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이브 에이드’공연 장면. /20세기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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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마켓에 따르면 영화가 개봉한 10월 31일 이후 지난 9일까지 40~50대의 일렉트릭 기타 구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늘었다. 디지털 피아노의 경우 37%, 드럼세트·전자드럼은 53%의 매출 신장을 보였다. 드럼 구매는 50대 이상에서 특히 많아, 전년대비 4배 이상인 314%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자 악기의 소리를 증폭시켜 주는 앰프·스피커의 매출도 79% 늘었다. 집 안에서 소음을 차단하고 사용할 수 있는 헤드폰 앰프의 매출은 8배 이상인 775% 증가했다.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은 고음질로 음악을 듣고자 하는 욕구로도 이어져, 같은 기간 오디오 구매가 117% 신장하기도 했다.

늘어나는 악기 구매에 기타 교습소도 호황을 맞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촌 ‘기타랩’의 박원심(43) 원장은 "영화 개봉 후 작년 이맘때보다 교습 문의가 20~30%가량 늘었다"며 "4050 중장년층 취미반이 대다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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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 전경. /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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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풍 분 ‘낙원상가’... "제2의 세시봉 기대"
악기는 대표적인 오락산업으로, 경기에 매출이 크게 영향 받는다. 오랜 불경기로 낙원상가엔 올해들어 40년만에 처음으로 3곳의 공실(空室)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으로 오랜 침체기를 겪고 있던 낙원상가에도 훈풍(薰風)이 불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상인들은 사이에선 "제2의 ‘세시봉’ 열풍이 부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세시봉 때와 달라진 건 통기타가 아니라 일렉트릭 기타로 바뀌었다. 낙원상가 2층 한 건반 매장의 임모(42)씨는 "2011년 세시봉 열풍으로 어쿠스틱 기타 판매가 크게 늘었던 적이 있다"며 "악기 판매는 영화·방송 등 영상매체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했다.

이곳 상가 내 130여개 점포를 관리하는 낙원상가 주식회사의 최난웅(68) 부장은 "낙원상가는 수많은 악기를 만져보고, 소리를 듣고 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며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과 겨울 방학이 맞물려 경기가 되살아났으면 한다"고 했다.

[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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