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추상미(45)는 오랜 기간 영화 감독을 꿈꾸었다. 하지만 20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찍는 삶보단 찍히는 삶만이 이어졌을 뿐이다. 1994년 연극 '로리타'로 데뷔, 카메라와 연극 무대를 오가며 숱한 작품들에 출연해온 그다. 그중 20대 후반에 나온 '생활의 발견'(2002)은 지금도 회자되는 그의 대표작. 철없는 아이 같은 경수(김상경)를 한눈에 반하게 만든 선영은 그 무렵 추상미의 매력이 가장 잘 묻어나는 캐릭터다.
하지만 추상미는 2009년 들어 자취를 감춘다. 이유는 대학원 진학이었다. 긴 기간 영화 감독을 꿈꾸었으므로 더는 미룰 수가 없었던 것. 그렇게 다시금 학생으로 돌아갔고, 연출과 이론 전반을 차근차근 익혀 나간다. 단편 '분장실'(2009)과 '영향 아래의 여자'(2011)는 그 시절 일궈낸 귀한 결실들이다. 그리고 7년이 흐른 올해, 그는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완성해낸다. 20여 년 만에 감독 데뷔라는 숙원을 이룬 것이다.
지난 15일 시사회 직후 만남에서 추상미는 "20년간 배우로 활동하다 이제 갓 '입봉'한 새내기 감독"으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원래 출발은 극영화였는데 다큐멘터리로 먼저 찍게 됐다"며 웃음 지었다.
"이번 작품은 극영화 준비를 위한 취재기 형식 같아요. 대학원 시절 만든 단편 두 편이 각각 전주영화제와 부산영화제 경쟁부문에 간 직후 아이를 출산했죠. 그러곤 휴학했고, 장편 영화 소재를 찾아 다녔어요. 하루는 지인이 하는 출판사에 놀러갔는데 폴란드로 보내진 한국전쟁 고아들 이야기를 알게 됐죠.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걸 나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로 찍어 보자. 그때가 2014년이었죠."
분주히 극영화 시나리오를 쓰던 중이었다. 완성이 다 되었을 즈음 추상미는 폴란드로 직접 떠난다. 탈북녀 이송 씨와 함께였다. 이역만리로 보내진 전쟁 고아 사연을 현지인들 입으로 듣기 위함이었다.
추상미는 "가보니 고아들을 돌봐주신 어르신들 나이가 80대 후반에서 90대 위주더라"며 "늦기 전에 이분들 증언을 최대한 기록하는 게 급선무였다"고 했다.
"당시 폴란드에 가서 장소를 물색하고 생존 교사들을 일일이 만나러 다녔죠. 알려지지 않은 실화를 들려 달라고 요청했어요. 다들 거리낌 없이 응해주셨는데, 문제는 전부 고령이시라는 것이었고, 돌아가실 날이 얼마 안 남았겠다는 걱정이 엄습했죠. 그래서 이분들의 생생한 증언과 육성, 그 자체 모습들을 카메라에 일일이 담기로 했고요."
영화는 다큐멘터리 장르를 표방하나 배우 출신답게 추상미가 직접 화면에 자주 나온다. 탈북녀 이송 씨와 함께 나란히 취재원들 목소리를 경청하고, 당시 탈북 고아들이 머문 지역들을 탐방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폴란드 국영방송에서 방영한 전쟁 고아 다큐멘터리 '김귀덕'이 자료 화면으로 쓰인다.
추상미에게 이번 작업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산후 우울증이 심해 과하게 아이에게 집착했다던 그다. 그러다 전쟁 고아들 삶과 이들을 고아로 만든 세상을 향해 시선을 넓히며 자가 치유를 해 나갔다. 인간과 세계를 보는 눈이 깊어질수록 내면은 한층 단단해졌다. 그는 "모성의 영역이 개인에게 머무를 때보다 세상을 향해 발휘될 때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추상미의 다음 극영화에는 과연 어떤 무늬와 질감들이 새겨질까. 분명한 건, 그가 이미 카메라 안에 진정성을 담아낼 줄 아는 감독이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폴란드 선생님들에게 많이 집중됐다면 극영화는 아이들에게 집중하려고요. 분단 상황, 한국 전쟁에서 비롯한 이야기를 다뤄보려 해요. 세상의 상처를 고민하는 감독이 되겠습니다.(웃음)"
[김시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