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유치원 없어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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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유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립유치원 중 두 곳이 "문을 닫겠다"면서 학부모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유치원 학부모들은 "책임은 지지 않고 도망가겠다는 것 아니냐"며 "당장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는데 답답하고 황당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사립유치원들 비리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점점 커지고 정부가 본격적인 감사를 실시할 계획을 내비치면서 이처럼 갑작스럽게 폐원을 결정하는 곳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경기도의 비리 유치원 명단에 오른 S유치원 대표원장은 지난 15일 저녁 열린 학부모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문을 닫겠다"며 선수 치듯 폐원을 통보하고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해당 유치원은 △설립자의 부친을 채용하고 급여는 원장 여동생에게 입금 처리 △교구교재비 허위·부당 지급 △설립자의 개인 아파트 관리비와 차량 수리비 집행 △설립자가 개인 카드(현금)로 물품 구매 등 비리가 적발돼 정직 3개월과 4000만여 원의 보전 처분을 받았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학부모들은 "그동안 비리에 대한 사과를 받고 투명경영에 대한 다짐을 받으러 갔는데 다짜고짜 문을 닫겠다고 해 황당했다"고 입을 모았다. 학부모 이 모씨는 "유치원에 수백 명의 원아가 다니고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일방적인 폐원을 통보할 수 있느냐"며 "워킹맘들은 당장 애를 맡길 곳도 없다. 이는 협박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5세반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김 모씨는 "7세까지는 계속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돈은 자기가 써놓고 왜 죄 없는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피해를 떠넘기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유치원 관계자는 "현재 5세반과 6세반 아이들이 졸업하는 2년 후까지만 책임지고 유치원을 운영할지, 아니면 운영을 계속할지 학부모님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표원장은 "다 지난 일인데 명단에 올려 원명을 공개했다"며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찬가지로 비리 유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경기도 H유치원도 학부모들에게 15일 문자메시지를 보내 "내년부터 신입 원아를 받지 않겠다"며 사실상 폐원을 공표했다. 재원 중인 원아들이 졸업할 때까지만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한 학부모는 "교사들도 곧 떠날 직장이라는 생각이 들 텐데 제대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겠느냐"면서 "교사들은 무슨 죄가 있으며 아이들과 학부모들 상처는 누가 보상해주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비리가 더 많아 문을 닫고 도망가려는 것처럼 보인다"며 "그런 뒤 다른 곳에서 이름을 바꿔 달고 버젓이 개원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비리를 저지른 원장들이 해당 유치원을 폐원한 뒤 이름과 장소를 바꿔 개원하는 행태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법적 강제와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불어 '로또 당첨'만큼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는 '유치원 추첨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학부모들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비리에 연루된 유치원이 줄줄이 문을 닫아버리면 그만큼 자녀를 보낼 곳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H유치원이 소재하고 있는 지역은 유치원이 부족해 매번 치열한 추첨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어서 "경쟁률이 치솟을 것"이라는 학부모들 우려도 따라 커지고 있다.
교육부와 전국 시도교육청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박춘란 차관 주재로 전국 시도교육청 감사관·유아교육 담당자 긴급회의를 열어 유치원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18일 열릴 전국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감사 결과 실명 공개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교육부는 이를 포함해 회계·인사 관련 규정 개선을 중심으로 하는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시기는 당정협의(21일)와 교육부 종합감사(29일) 사이인 다음 주가 될 전망이다.
박춘란 차관은 "유치원의 비리·부패·불공정 문제는 국민 상식에 맞서는 일이며 모든 유아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교육부 관계자는 "유치원 감사를 국민 눈높이에 맞는 수준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큰 방향과 원칙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전했다.
한편 사립유치원 모임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유를 막론하고 저희를 믿고 아이를 맡겨주시는 학부모님께 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한유총 비대위는 이날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일을 계기로 한유총은 깊이 반성하면서 대한민국 유아교육을 한 단계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이제 이번 사태는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신뢰하는 유아교육을 만드는 논의로 이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5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사립유치원 비리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효혜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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