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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최갑수의 먹고싶GO] 사랑보다는 포트 와인, 이별보다는 에그 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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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많은 사람들이 여행작가를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행 다니는 게 일이니까. 음,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그게 또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일 또는 직업이 되면 뭐든 쉽지 않게 된다. 여행작가로 살아가는 것, 끝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계속 살아남는 것, 여행작가로 먹고사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어떤 특별한 것'이 점점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링 위에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이 일을 그만두려고 마음먹은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럴 때마다 조금 더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게 하는 계기가 신기하게도 생겨났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이번 포르투갈 여행도 그랬다. 비행기에 오를 때부터 나는 아주 지쳐 있었다. 목적지가 포르투갈이 아니었다면 아마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일을 그만두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이 포르투갈이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출장이야'라고 생각하며 짐을 쌌다.

해 질 녘의 포르투 동루이스 다리 위에서 잠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며 만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도루강(Rio Douro)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졌고, 사라지는 해의 잔상을 바라보며 지금까지의 여행에서 만난 것들을 문득 떠올렸다.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것들은 여전히 내 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언젠가 그것들과 꼭 다시 만날 것이라고 예감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기 위해 우리는 왜 평생을 다해야 할까. 그러지 말자.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대로 가슴에 담아두자.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 이만큼이나 그리웠다고 보여주자. 나는 포켓 플라스크에 담아 온 포트 와인을 홀짝거렸다. 와인은 추억처럼 달콤했고 이별처럼 진했다.

리스본에서는 에그 타르트를 먹었다. 파스테이스 드 벨렘(Pasteis de Belem)이라는 가게에서였다. 세계에서 에그 타르트를 가장 먼저 만든 곳이라고 했다. 솔직히 에그 타르트는 그전까지 한 번도 먹어 보질 못했다. 서울에서 에그 타르트를 파는 가게를 많이 봤지만 먹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에그 타르트는 맛있었다.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고 에그 타르트를 한 입 크게 베어 무는 순간 여행작가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고 이별이고 될 대로 되라지. 에그 타르트를 먹는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해.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 조금 더 이 일을 해보기로 했다. 동루이스 다리 앞에서 마신 포트 와인과 리스본의 에그 타르트 때문이다. 이 맛있는 음식들을 두고 여행작가를 그만둘 순 없다. 아주 사소한 이유지만, 우리네 삶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굴러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랑보다는 포트 와인, 이별보다는 에그 타르트.

[최갑수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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