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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흑인문제 논의한다며… 트럼프, 래퍼와 '기괴한 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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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경찰에 팰 권리 줘야' 등 10여분간 래퍼 속사포 얘기 듣다 "백악관에 온 소감은?" 말 한마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자신의 열렬한 지지자인 흑인 래퍼 카녜이 웨스트를 만났다. 흑인 고용, 흑인 범죄 등 흑인 문제를 논의할 목적으로 마련됐다. 하지만 웨스트가 흑인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만 10여 분 동안 속사포처럼 쏟아냈고, 트럼프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듣기만 한 '기괴한 회동'으로 끝이 났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적힌 빨간 모자를 쓰고 등장한 웨스트는 트럼프와 취재진을 향해 "트럼프는 영웅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는 나 같은 또라이가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앉기가 무섭게 트럼프를 향한 자신의 애정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웨스트는 "내가 트럼프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잖아'라고 하는데 인종차별주의 따위는 나를 건드릴 수 없다"면서 "사람들이 흑인이라면 당연히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인종차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트럼프가 북한과의 전쟁 위기를 취임 첫날에 해결했다"고 했다. 트럼프의 선전 문구인 '미국을 위대하게'가 적힌 모자를 가리키며 "슈퍼맨의 망토처럼 나를 보호해 준다"고도 했다.

웨스트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시카고 경찰에게 용의자를 두들겨 팰 권리를 줘야 된다"고 했다가, "경찰의 잔혹함에 대한 해결책은 사랑"이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렸고, "학교는 지루하니까 수학 문제를 풀 시간에 아이들에게 농구를 시켜야 된다" "우주의 수는 무한하다"는 등 다양한 영역을 종횡무진 넘나들었다. 기자들에게 공개된 10여 분간의 회동에서 트럼프가 한 말이라고는 "백악관에 온 소감이 어떤가"라는 한마디였다. ABC는 "트럼프 대통령이 맥락을 따라가기 힘든 웨스트의 장광설에 얼이 빠진 듯 보였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공개 회동은 웨스트가 갑자기 일어나 트럼프에게 다가가더니 "이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며 끌어안는 것으로 끝났다. 트럼프는 취재진에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말했고, 웨스트는 "(그 이유는) 영혼에서 우러나와서다. 나는 단지 (영혼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응수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는 자신이 흑인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웨스트의 입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지만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렸다"고 평했다.

[뉴욕=오윤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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