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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요셉의원 치료비는 사과 하나, 오징어 두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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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창간 29년 만에 100호… 노숙인 무료진료 등 각종 사연 소개

"그간 기체후 일향만강하옵신지요(…). 일전에 링겔 맞은 다음 다소간 해를 끼친 것 같아 원장님을 찾아뵈옵기가 좀 어렵답니다. 조그만 성의지만 꼭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십시요. 원가나 되는지 모릅니다."

1989년 3월 '요셉의원' 소식지 창간호에 실린 '그립고 보고 싶은 원장님전'이란 제목의 환자 사연이다. 형편이 어려운 할머니가 요셉의원에서 무료로 링거를 맞았다. 기력을 찾은 할머니는 새마을사업에 나가 받은 3만원과 함께 이 편지를 적어 병원에 가져왔다. 이 돈은 '핑퐁'으로 이어졌다. 선우경식(1945~2008) 원장은 이 돈을 '치료비에 보태시라'고 돌려 드렸다. 그러나 할머니도 지지 않았다. 결국 곶감을 사서 다시 병원에 보냈다.
조선일보

행려병자, 노숙인, 알코올중독자 등을 무료로 진료하는 요셉의원 의사와 간호사, 봉사자들이 ‘100호’ 소식지를 들고 모였다. 요셉의원은 장기 후원하는 연로한 분들의 요청으로 온라인과 함께 종이 소식지도 계속 발간하고 있다.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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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행려병자, 알코올중독자 등을 무료로 진료해 온 서울 영등포역 인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요셉의원'(원장 조해붕 신부)이 펴낸 소식지가 창간 29년 만에 지령(誌齡) 100호를 발간했다. 후원자와 봉사자, 환자를 이어주는 소식지는 초창기 14년간은 1년에 한 번, 많으면 3번씩 발행됐다. 그만큼 환자 돌보기 바빴다. 표지엔 '편집부'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 소식지 편집은 봉사자 한 명이 맡아왔다. 전 편집장 변수만씨는 "생전의 선우 원장님은 뭐든지 '아끼라'는 말씀만 하셨다"고 했다. 현 편집장 김병희씨는 "최소 인력으로 만드는 소식지이지만 제보자와 기자는 봉사자 수백 명"이라고 말했다. 2001년부터 계간, 2012년부터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소식지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가난한 이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가는 모습이다.

1990년 3호에 사연을 실은 여중생은 요셉의원을 "커다란 병원보다 더 큰 병원"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목을 삐어 고생하던 중 한 성당 아저씨의 도움으로 병원을 소개받은 그는 당시 신림동 골목에 있던 병원이 너무 작아서 찾기 힘들었단다. 이후 간염을 앓으면서 도움을 받고 '지저분한 아저씨'를 간호사 언니들이 목욕까지 하도록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간호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고 썼다.

매호마다 사과 한 봉지와 오징어 두 마리를 가져오는 환자, 1년 가까이 매일 아침 단식하며 하루 500원씩 모아서 전해온 버스 기사, 후원금 1000만원을 내기 위해 시카고에서 직접 날아온 후원자, '무료로 치아 보철 치료를 받았는데 실비는 내고 싶다'는 노점상, 스님이 시주 받으러 왔다가 후원금 내고 간 사연 등이 줄을 이었다.

환자 눈엔 천사로 보이는 의사, 간호사이지만 정작 이들은 "해 드린 게 없다"고 말한다. 한 약국 봉사자는 "강산이 한 번 변하는 햇수가 됐지만 그동안 나는 무엇을 도왔으며 환자들은 내게서 무엇을 얻었을까 생각하니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적었다. 선우 원장은 생전에 "환자들에게 약보다는 밥을 먼저 주고 싶다" "환자들에게 왜 좀 더 잘 해주지 못했을까…"를 되뇌었다. 김수환(1922~2009) 추기경도 자주 등장했다. 김 추기경은 2003년 요셉의원 미사 강론에서 "자기를 내어줄 줄 모르면 참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남들이 싫어하고 피하는 곳에서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여러분 때문에 이 세상이 망하지 않고 견디어 내고 있지 않은가 느껴진다"고 했다.

현재 요셉의원은 신완식 의료원장 등 600여 명에 이르는 봉사자, 연인원 1만 1000여 명 후원자로 꾸려지고 있다.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과장을 지내다 정년을 6년 앞두고 조기 퇴직한 후 2009년부터 요셉의원에서 상근직으로 봉사하고 있는 신 원장은 "초창기 어려움이 생생히 기록된 옛 소식지를 들춰 보면 '백 투 더 베이식',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며 "또한 아직 이 세상에 희망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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