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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남북관계 주도 조급증?…韓美공조 돌발악재 자초한 文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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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한국의 대북 독자제재 완화 가능성에 거칠게 제동을 걸며 한미 간 대북공조가 또다시 의견 차이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5·24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촉발된 논란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선 비핵화-후 제재완화' 방침을 재확인하며 한미 간 대북공조 국면을 살얼음판으로 만들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승인이 없으면 한국의 제재 완화는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수위 높은 발언을 내놨다. 트럼프식 직설화법임을 감안해도 '동의'나 '협의'가 아닌 '승인(approval)'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는 주권국 간 외교관계에서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2차 미·북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북측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제재 대오를 유지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대북제재 완화 시점과 수위 등은 한국이 아닌 자신들의 대북협상에 온전히 쓰여야 할 카드라는 설명이다.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등 5·24조치의 연원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채 '한국이 혼자 속도를 내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제재 완화를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가졌을 개연성이 높다.

한반도 비핵화 대화 국면이 펼쳐진 이후 한미 간 입장 차가 여과 없이 노출되며 우려를 키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같은 양상은 주로 남북 교류협력 확대를 통해 대북·대미 중재력을 키우려는 한국 측 '과속'에 대해 미국 측이 불만을 제기했을 때마다 수차례 불거졌다.

한미는 올해 남북 간 정상회담 결과물인 4·27 판문점선언 이행, 9·19 평양공동선언 합의와 관련해 수차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 측은 판문점선언 합의사항인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문제를 놓고도 한국 측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한국 측은 연락사무소 개소 준비 과정을 전후로 반입되는 발전설비와 기계류, 전산 집기나 유류 등이 대북제재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재 예외 인정을 신청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은 "남북관계 발전은 비핵화 진전과 함께 가야 한다"고 밝히며 에둘러 불만을 표시했다. 결국 연락사무소는 당초 목표했던 8월이 아닌 9월 평양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서야 문을 열 수 있었다.

8월 말 남북철도 공동점검 사업이 유엔사령부 반대로 불발된 것도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당시 유엔사 측은 서울역을 출발한 남측 열차가 유엔사가 관할하는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해 북측 신의주까지 시험 운행을 펼치는 사업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구하며 제동을 걸었다. DMZ에 대한 관할권을 가진 유엔사와 실질적으로 유엔사를 지휘하는 미국 측의 불편함이 반영된 조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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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남북정상회담 직전 한미 외교장관 간 통화에서 남북 군사분야 부속합의서 가운데 군사분계선(MDL) 일대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한 대목에 대해 미국 측이 불만을 표시했던 경우도 있다. 더구나 이는 지난 10일 일본발 외신 보도와 같은 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사실로 확인되며 한미 공조의 거친 결을 내보였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한미가 긴밀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지만 북핵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가 다른 측면이 있는 만큼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 소식통은 "이견이 있더라도 물밑에서 조율하며 정책을 추진해야 함은 기본"이라며 "양국 간 이견이 자꾸 이렇게 공개된다면 한미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부정적 영향이 미칠지 예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물론 트럼프 정부도 제제 완화 문제로 한미 간 불협화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제재 완화를 강력히 원하는 북한은 물론 이에 동조하는 중국, 러시아 등이 한국의 입장을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날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은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내용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는 보도에 대해 "우리는 한국과 거의 매일 대화하며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며 "우리가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는 이런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7일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에서 미·북이 실무급 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으나 속도가 좀처럼 붙지 않고 있다. 국무부는 이날 실무협의 일정에 대해 "현재는 발표할 출장 일정이 없다"고 밝혔다.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협상을 진행할 당사자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도 이날 베이징에서 기자들과 만나 협상 계획에 대해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 서울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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