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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美, 남북철도·군사합의에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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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美에 중대한 영향 주는 사안인데 사전조율도 안하나"

지난달 강경화와 통화서 강한 불만 표시… 康장관, 국감서 인정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17일 오전 강경화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한국이 미국과 사전 조율 없이 남북 관계 문제에 앞서나가는 데 강하게 불만을 표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이날 "폼페이오 장관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될 내용을 미리 통보받고 미국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사안이 사전 조율되지 않은 것에 크게 분노했다"며 "강 장관과의 통화에서 거친 언사로 불만을 노골적으로 전달했다"고 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이 격분한 것은 평양 선언 중 '남북 철도 연결 연내(年內) 착공'에 관한 내용과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였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미국의 대북 제재 전략과 한·미 군사 대비 태세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인데 한·미 간에 사전 논의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며 "폼페이오 장관은 이런 중대한 사안을 북한과 합의해서 발표하기 직전에 미국에 통보한 점을 문제 삼았다"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과의 통화 당시 강 장관은 남북 철도 연결과 군사 분야 합의서의 세부 내용을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폼페이오 장관은 감정이 가라앉은 후인 17일 저녁쯤 다시 강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당시 미국 국무부는 통화 후 폼페이오 장관이 두 번에 걸쳐 강 장관과 통화한 사실을 즉각 공개했으나, 우리 외교부는 첫 번째 통화만 공개했다가 국무부 발표 후 두 번째 통화 사실을 알렸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폼페이오 장관이 격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우리 정부는 남북 군사회담 등 군사 분야 합의서 체결을 위한 모든 과정에서 미측과 긴밀히 협의해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국감장에서 강 장관은 '폼페이오 장관이 통화에서 남북 군사 합의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느냐'는 질의가 나오자 "맞는다"며 일부 인정했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이 항의하면서 미국식 욕설을 했느냐'는 질의엔 "아니다"라고 했다.이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격노하는 소동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 내용을 보고 강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힐난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미군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뿐인데, 한국 측으로부터 자세한 설명과 협의가 없었다"고 전했다.

당시 남북 합의 내용 중에는 비무장지대(DMZ) 비행금지구역 확대와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유엔군사령부 및 미군과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 있었다. 특히, 미국 측은 DMZ 비행금지구역 확대에 화를 냈다고 한다. 주한미군은 이곳에서 무인기를 운용해 북한의 군사 태세를 감시하고 있다. 그런데 비행금지구역이 확대되면 "눈가리개를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이다.

남북 합의에는 한·미 군사훈련을 크게 제한하는 항목도 있어 미 의회에서는 "한국은 이미 주한미군이 없어도 되는 걸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북한의 핵무장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닥뜨리게 되느냐의 고비가 다가오고 있다"며 "한국이 남북 관계를 단숨에 앞세워 북한에 대한 (제재) 포위망이 풍전등화에 놓여 있다"고 했다.

또 미국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감싸고도는 상황에서, 한국마저 미·일로부터 떨어지면 '미·일 대(對) 남·북·중·러' 구도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미 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외교부 해명은 당시 미국 측 기류와도 배치된다. 남북 정상회담 며칠 후 로버트 에이브럼스 신임 주한미군 사령관 지명자는 미 상원 군사위 인준 청문회에 출석해 "DMZ 내 모든 활동은 유엔군 사령부 소관"이라고 했었다. 이는 남북 군사 합의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됐다. 당시 에이브럼스 지명자는 "그들(남북)이 대화를 지속할 수는 있다"면서도 "모든 것은 유엔군 사령부에 의해 중개, 심사, 사찰, 이행돼야 한다"고 했다. 외교부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한·미 정부 간에 사전 조율이 된 문제였더라면, 이런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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