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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주진형 칼럼] 거시경제 불균형, 보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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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현재의 잠재성장률 추산 방식을 생각없이 추종하면 만성적인 총수요 부족을 으레 그럴 수밖에 없는 균형상태로 착각하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지금 우리가 바로 그 꼴이다. 그다음, 경상수지 흑자를 국내 수요 부족의 증상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오늘은 조금 어려운 얘기를 하고자 한다. 약간은 전문적인 얘기다. 그럼에도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요즘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의 뒷배경에 거시 경제에 관한 착각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잠재성장률이다. 잠재성장률은 경제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자기가 갖고 있는 자본과 노동과 기술을 모두 써서 성장할 수 있는 한도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정할 때 중요한 잣대로 쓰인다. 작년에 한국은행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2016~2020년 동안 2.8~2.9%로 예상했다.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 2.8%는 잠재성장률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자기가 성장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3%보다 더 높은 성장은 일시적이거나 부작용을 수반할 것이니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다음 문제는 고용이다. 사람들은 고용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청년고용 문제만이 아니다. 주위에 노는 사람이 너무 많다. 50대 중반을 넘기면서 아직 더 일하고 싶은데도 직장에서 물러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570만명이 넘는 자영업자 중 70%가 자기 말고 고용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다.

셋째는 국제수지다. 지난 10여년간 경상수지가 대폭 늘었다. 2008년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0.3%에 불과하던 경상수지 흑자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동안 대폭 늘어 2015년엔 7.7%에 이르렀고 작년에는 5.1%였다. 현재 선진국 중 이 정도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나라는 독일이 유일하며,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 비율은 지난 5년간 약 2%로 내려와 있으니 지금과 같은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국제적인 시각에서 볼 때 예외적으로 큰 규모다.

좋아해야 하나? 과거 중상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경상수지 흑자는 바람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대규모 흑자는 마냥 좋아만 할 일이 아니다. 다른 시각에서 볼 때 경상수지 흑자는 국내 수요가 공급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부족한 국내 수요를 해외 수요로 메꾸고 있다.

나는 이 세 현상 사이에 심각한 모순을 느낀다. 실제 성장률은 잠재성장률과 다르지 않다는데 정부나 민간이나 모두 고용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고, 경상수지는 대규모 흑자를 내는데 그것 때문에 살림살이가 펴졌다는 사람은 적다.

이 모순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잠재성장률 추계가 잘못된 것일까? 우리가 고용 문제에 대해 과장된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일까? 경상수지 흑자가 크게 났으니 국내 경기가 흥청망청해야 하는데 도리어 왜 국내 경기는 부진하다고 하나?

내 생각엔 우선 잠재성장률 추계가 잘못되었다. 현재와 같은 잠재성장률 추계 방식에 의하면 총수요 부진에 따라 투자나 소비가 부진하고 이에 따라 고용량이 줄어도 이것이 어느 기간 지속되면 사후적으로 계산된 잠재성장률도 같이 내려가는 결과가 빚어진다. 즉 현재의 잠재성장률 추산 방식을 생각없이 추종하면 만성적인 총수요 부족을 으레 그럴 수밖에 없는 균형상태로 착각하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지금 우리가 바로 그 꼴이다. 그다음, 경상수지 흑자를 국내 수요 부족의 증상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는 한국 경제에서만 적용되는 현상이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겪고 있는 장기 침체에 대한 인식과 대처 방식을 둘러싸고 유럽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핵심이기도 하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경제는 과거 성장 궤도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현 경제 규모는 과거 성장 궤도가 지속되었을 경우에 비해 약 10%나 축소된 상태라고 하며 유럽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고 한다. 이것을 새로운 정상 상태(New Normal)로 볼 것인지 아니면 구조개혁을 하거나 적극적인 경기 부양 정책으로 만성적인 수요 부족에서 탈피하도록 노력해야 할지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 논쟁이 벌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성장률 하락과 만성적 총수요 부족 상태를 어떻게 볼지에 대한 의견을 정리하지 못한 채 체념하거나 어정쩡하게 넘어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투기와 가계부채 확대를 조장해 경기 회복을 꾀한 것이 전부다.

엉거주춤하긴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 목표대로 취업자가 예전처럼 30만명 늘고 GDP가 3%를 달성하기만 하면 좋을까? 바로 그게 관료적 현상유지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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