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장르 공연무대와 결합
대중가요 가사나 클래식 읊어
입맛따라 골라보는 무대
뮤지컬 ‘파리넬리’ ‘살리에르’
밥 딜런 노래가사 낭송 공연
생소한 퀴어 소설 소개하기도
“이경과 수이는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났다. 시작은 사고였다.”
지난 1일 서울 대학로 드림시어터에서 5명의 배우가 무대에 올랐다. 보면대를 바라보고 앉은 배우들이 대본처럼 제본된 얇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 속 ‘그 여름’이다. 배우들은 때때로 책을 읽고, 외워서 말하고, 일어나 연기를 했다. 공연 이름은 ‘퀴어한 낭독극장’. 퀴어 소재의 소설을 입체적으로 읽어주는 낭독극이다. 이날 공연을 본 이수연(가명, 21)씨는 “미리 책을 읽어 내용을 알고 있었는데 낭독극으로 보니 두 주인공의 감정변화가 더 크게 다가와 마음 아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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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보는 낭독’의 시대다. 시, 소설, 희곡을 읽는 낭독이 공연 무대에서 저변을 넓히고 있다. 낭독에 연극을 결합한 ‘낭독극’, 뮤지컬을 접목한 ‘낭독뮤지컬’, 대중가요 가사를 읽거나 클래식 음악과 밀접한 문학을 음악과 곁들이는 ‘낭독음악회’ 등으로 낭독 공연이 확장하고 있다.
연극계에서 낭독은 개막 전에 작품을 미리 공개하는 리딩 공연 형태로 선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연극이 제작되기 전 제작에 참여할 스폰서를 찾기 위한 쇼케이스로 작품을 홍보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효과나 음악을 넣어 연극적 기법을 활용한 낭독극이 온전한 공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늘었다. 지난 6월 서촌공간 서로가 주최한 ‘낭독 페스티벌’ 프로듀서를 맡았던 정진세 연출가 겸 작가는 “한 편의 소설을 연극화하더라도 문장에서 보여주는 세심한 표현들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가 많다”면서 “낭독극은 문장력이 있는 동시대 소설을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연기를 가미해 몰입감 있게 보여줄 수 있어 선호하는 관객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낭독극의 특징은 화려한 조명, 무대전환 없이 연기자가 대본을 보면서 주로 목소리로 연기한다는 점이다. 제작사 쪽에서는 제작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고, 그만큼 티켓값도 낮아져 관객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몸짓 연기가 중심인 연극의 본령에서 다소 벗어나 보일 수 있지만 이미 외국에선 이런 낭독 공연이 자리를 잡았다. 퀴어한 낭독극장을 올린 ‘프로젝트 이어’ 관계자는 “적은 자본으로 올릴 수 있는 연극을 배우들과 함께 고민하다 낭독극을 하게 됐다”면서 “퀴어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 연극에서 많이 없기도 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기 공연으로 선보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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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의 간소한 형식은 다른 공연 장르에서도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뮤지컬제작사인 에이치제이컬쳐는 기존에 없던 낭독뮤지컬을 만들어 <마리아마리아> <파리넬리> <살리에르> 등의 기존 대극장 공연을 지난달 28일부터 중극장에서 연달아 선보이고 있다. 에이치제이컬쳐 관계자는 “무대장치, 등장인물을 최소화하고 150분의 공연을 80분으로 압축했지만 <마리아마리아>의 경우 노래도 18곡을 하는 등 뮤지컬의 맛을 살렸다”고 말했다. 낭독이란 형식을 빌어왔기 때문에 예수와 마리아 이야기인 <마리아마리아>에서는 성경으로 보이는 책자를 앙상블 배우들이 종종 읽으며 드라마가 전개된다. 노래 반주는 밴드나 오케스트라 대신 피아노 한 대가 담당한다. 에이치제이컬쳐 관계자는 “낭독뮤지컬은 노래가 있다 보니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들려주는 쪽에 가깝다”면서 “새로운 뮤지컬 형식을 고민하다 선보였는데 장기적으로는 국외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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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 가사를 낭독하는 낭독음악회도 열렸다. 교육콘텐츠를 만드는 파스텔배움은 지난달에 ‘밥 딜런 낭독회-샷 오브 러브’를 개최했다. 2년 전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직후 국내 출판사에서 밥 딜런의 노래 가사들을 번역해 시선집이 나왔는데 이 책의 공역자인 서대경, 황유원 시인이 밥 딜런의 노래를 시로 낭송했다. 공연은 음악평론가가 밥 딜런의 음악세계를 설명하고, 초대 가수는 밥 딜런의 노래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민구 파스텔배움 수석기획자는 “밥 딜런의 가사들이 문학성을 인정받았는데 제대로 된 낭독회는 이뤄진 적이 없었다”면서 “낭독이란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노래를 들려주는 시도를 해봤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도 낭독을 접목했다. 연극배우 박정자는 다음달 20일 <당신의 시집을 펼치면>이란 낭독음악회를 연다. 도종환, 이육사 등의 시를 낭독하고 이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창작 클래식 곡을 재즈 피아니스트 김가온, 콘트라베이시스트 송미호 등의 연주로 들려줄 예정이다. 마포문화재단은 박정자에 이어 윤석화, 손숙의 클래식 낭독음악회를 10월에 선보인다.
낭독이 이처럼 여러 공연 장르와도 어울려 확장될 수 있는 건 언어가 만들어내는 집 속에서 관객과 교감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엄현희 연극평론가는 “낭독은 서사를 상상하는 매력이 있어 화려한 공연과는 다른 단출하면서 소박한 맛이 있다”면서 “최근에는 남산예술센터나 두산아트센터 등이 작품 개발을 위해 낭독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해 앞으로도 다양한 장소와 장르에 맞는 낭독 공연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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