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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가부장제가 상식? 이 부족에겐 '아버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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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어머니의 나라|추와이홍 지음|이민경 옮김|흐름출판|312쪽|1만3800원

이 나라에는 '아버지'가 없다. 모든 아이는 어머니에게 속한다. 집안의 어른은 가모장(家母長), 즉 외할머니다. 원시 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 윈난성(雲南省) 루구호(瀘沽湖) 일대의 소수민족 모쒀(摩梭)는 지구 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모계사회를 일구고 있다.

싱가포르 대형 로펌의 고문 변호사였던 저자는 깨지지 않는 유리천장에 회의를 느끼고 사표를 던진다. 잡지에서 우연히 모쒀족 이야기를 접한다. 이 책은 저자가 무작정 모쒀족 마을을 찾아 6년간 살며 관찰한 것들을 기록한 인류학적 에세이다.

모쒀족 어머니는 모두 독신모다. 결혼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겐 성년이 되면 '꽃방'이라는 사적인 공간이 주어진다. '아샤오'라 불리는 연인이 꽃방을 찾아 여자와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면 제집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방식의 관계 맺기를 학자들은 주혼(走婚·walking marriages)이라 한다. 모쒀족 남녀는 살면서 여러 명의 아샤오를 둔다.

아이들은 아비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남자가 돌봐야 할 아이는 여자 형제의 아이인 조카들이다. 가모장 사회라고 해서 남자를 하대하거나 차별하지는 않는다. 남자는 남편이나 아버지로서 의무가 없고, 나이가 들어 최고 연장자가 되면 가모장의 형제라는 자격으로 큰 권위를 갖는다.

모든 집의 중심에는 '가모장의 방'이 있다. 가장의 침실이자 온 가족을 위한 난롯가다. 모쒀 여자에게 살생은 금물이다. 여성은 생명의 원천으로 여겨져 죽음과 거리를 둔다. 닭을 잡거나 시신을 염하는 건 남자의 일이다. 모쒀 여성이 남자를 고를 때 우선순위는 건장함과 아름다움이다. 반면 엄마가 딸에게 가장 높이 사는 가치는 지성(知性)이다. 딸은 미래에 가정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국의 가부장제와 대비하며 모쒀 사회를 읽어나간다. 정부의 개입, 관광업과 인터넷 발달 등으로 모쒀의 가모장제가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말한다. "이제 다른 시대로 이행해가는 그들의 우주를 마주칠 수 있어 그저 반가웠다." 이 책을 통해 가부장제가 상식이 아닌 세계도 실재하다는 것을 알게 돼 반가웠다.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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